남성복 바다를 항해하는
유대의 나침반
자유시대

151번째 이야기 / 2024.2.28

누구나 온라인 쇼핑의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기억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통신 판매와 배송 산업의 발달은 엄청난 편리를 가져온 동시에, 광활한 정보의 바닷속에서 ‘찐’을 낚아야 하는 막막함 또한 안겨주었다. 월척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낚싯줄을 감아올렸지만 사실 바늘에 꿰인 것은 바다 쓰레기였다-라는 슬픈 현실을 종종 겪게 된다.

특히 의류는 각종 다양한 변수로 화면 속 제품과 배송 온 실제 제품의 괴리가 클 경우가 많다. 색감, 재질, 길이, 피팅감, 재봉 상태 등 단순히 ‘모델의 차이’라기엔 납득하기 어려운 저품질의 옷에 당첨되면 조용히 반품 처리 버튼을 누르며 고작 이것을 고르기 위해 투자한 시간을 아까워하기도 부지기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뭐든 내 눈으로 보고 내 몸으로 경험한 것만큼 안전하고 믿을만하고 정확한 것은 없을 것이다. 천안역 지하상가의 남성 의류매장 <자유시대>는 그 상호처럼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유롭게 본인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도록 항해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인연의 실로 이어진 패션 세계

차은애 대표가 <자유시대>를 운영한지는 어느덧 벌써 20년이 넘었다. 사회생활 초기엔 삼성 반도체에서 근무했었으나 교대 근무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패션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의류매장 판매직을 해보고 싶어 이직을 알아보던 중 인연을 맺게 된 곳이 바로 천안역 지하상가다.

“사실 당시 <자유시대>는 남편의 형님이 운영 중이던 매장이었어요. 저는 다른 매장에서 근무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주버님이 우리 부부에게 매장을 인수하시면서 2003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운영 중이에요.”

성실하고 친절할뿐더러 시대의 유행 흐름을 읽는 센스도 탁월한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자유시대>는 호황을 누리며 승승장구의 길을 달렸다. 너무나 바빠 두 사람으로 모자라 직원까지 둬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천안시 중요 상권이 원도심에서 멀어지고 코로나 이슈, 경기 불황 등 잇단 악재가 겹치며 현재 모든 매장이 그렇듯 <자유시대>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지만 단골손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부심을 가지고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자유롭게 변주하는 패션의 항로

<자유시대>가 현재 추구하고 있는 패션 디자인 컨셉은 내추럴함과 댄디함이다. 모나지 않아 무난하고 크게 유행 타지 않을 만한 데일리 스테디 아이템들이 돋보였다. 20년간 남성 의류업에 종사한 전문가로서 그동안 의류 시장의 트렌드 흐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매장명이 <자유시대>니까 거기에 맞춰 얘기를 드리자면, 예전에는 ‘나만의 개성이 마음껏 펼쳐질 자유’를 중요시했다면 요즘은 ‘내 몸이 편해질 자유’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 같아요. 같은 자유라도 그 카테고리가 다른 거죠. 2000년대 초는 온갖 소재와 컬러풀한 색감의 다소 특이한 옷들이 많았는데 자신의 개성 표현을 위해서라면 설령 옷이 좀 불편할지라도 감수하고 입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1순위가 편안함이에요.”

보통 의류 매장은 대표의 선호도가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남편과 함께 운영할 땐 독특한 패턴과 화려한 색감을 선호하는 남편의 취향이 적극 반영되어 당시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호평을 들었다. 현재는 차대표가 상품 매입부터 매장 관리까지 홀로 운영 중으로 평소 본인의 취향인 베이직 내추럴 무드의 제품을 주로 갖추고 있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말도 있듯이 기본템이지만 핏이 예쁘고 원단 재질이 좋은 옷은 일상에서 두고두고 입을 수 있어요. 20여 년간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단골 고객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데, 자연스레 그 흐름에 맞춰서 초창기 땐 10대~20대가 타깃이었다면 지금은 30대~40대 남성분들이 자주 입는 스타일로 구성하고 있어요.”

희망의 불씨를 지키는 깊은 유대감

차대표는 일단 고객이 매장에 오면 찾으시는 상품이 있든 없든 그분에게 좋은 인상을 주자는 것이 운영 철칙이라고 한다.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매장에 들렀다 나오셨을 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실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다.

“오랜 단골분께서 한창 코로나 시국이 제일 심할 무렵 매장에 불쑥 찾아와 옷을 구입하고 가셨다가 갑자기 돌아오셨어요. 혹시 뭔가를 두고 가셨나 싶어서 여쭤보니 하는 말이 '누나 버티셔야 돼요. 그래야 제가 또 오니까 꼭 버텨주세요.' 이러는 거예요…. 벅차서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간신히 참다가 안에 들어와서 엄청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차은애 대표는 일말의 후회 없이 늘 최선을 다해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와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적응하고 성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고객에 대한 진심과 애정이다. 본인은 좋은 고객만 만나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차대표의 그런 선한 마음이 자석처럼 예쁜 마음들만 이끌어 당긴 것이 아닐까.

온 청춘을 바친 20년 동안, 차대표는 깊은 유대를 통해 고객과 함께 성장하며, 그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한다. 비록 천안역 일대 상권이 예전 같지 않을지라도 희망의 연료를 가득 채우고 오늘도 <자유시대>호는 쾌속 운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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