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밀어 정성으로
지연식당

142번째 이야기 / 2023.12.30

대부분 어릴 적 추억의 식당 하나 정도는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시험을 잘 보면 상으로 갔던 레스토랑, 술 한 잔 걸친 아버지가 사오셨던 통닭집, 하굣길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먹었던 떡볶이집 등등 각각 사연은 달라도 어렴풋이 혀끝에 남은 그 맛은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이런 식당들이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곳은 드물다. 추억 속 맛집이 변함없이 지금까지도 존재한다는 건 큰 행운이다.

천안역 지하상가의 <지연식당>의 장금란 대표는 91년부터 지금까지 32년간 묵묵히 그 자리에서 단골들의 추억까지 지키고 있다.

변함없이 이어진 추억의 맛

90년대 당시 천안역 지하상가는 많은 유동인구와 큰 규모의 상권을 자랑했다. 어머니 손맛을 이어받아 음식 솜씨가 좋았던 장 대표는 이곳에서 식당을 열어 제2의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특별히 누군가에게 레시피를 배운 것은 아니었다. 특유의 감각으로 매일 고심하고 연구하고 고객의 반응을 피드백하여 지금의 맛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일단 좋은 재료를 써야 돼요. 음식은 무엇보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가 최우선이에요. 밑반찬인 김치만 해도 전 국산 재료만 써요. 다들 아실 거예요. 저렴한 재료를 쓰면 맛이 완전히 달라져요. 아무리 덜 남더라도 우리 식당을 찾아와주는 고객들이 맛있게 드시는 게 좋으니까 그것만큼은 제가 꼭 지키고 있어요.”

장대표의 추천으로 김밥과 순두부찌개, 김치볶음밥을 맛보았다. 막 싼 김밥은 눅짐 없이 질 좋은 김의 바삭함이 기분 좋았고, 순두부찌개는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여 호록호록 마냥 먹을 수 있었다. 손수 담근 김치로 만든 볶음밥은 일반적으로 먹었던 기존 분식집과는 색다른 감칠맛이 느껴졌다. 거기에 콩나물까지 들어있어 아삭하니 더욱 식감도 좋았다.

전반적으로 간도 적당하고 깔끔하여 위에 부담 없는, 맛있는 집밥의 느낌이다. 재빠른 솜씨로 마법처럼 척척 주문한 음식을 조리하는 뒷모습에서 진한 연륜의 향이 느껴져 새삼 감탄이 나왔다.

별을 따라 열정은 계속 된다

<지연식당>의 부엌은 늘 아침 6시 반부터 시작된다. 그날그날 쓸 재료를 다듬고 반찬을 만들고 매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어느새 그렇게 30년이 넘게 흘렀다. 쉬는 날은 오로지 한 달에 두 번, 지하도 상가 정기 휴일인 첫째 셋째 주 화요일이다. 자녀들은 이제 어머니가 고된 식당 일을 접고 편히 쉬길 바라며 만류하고 있지만 장대표는 아직 그럴 마음이 없다.

“저는 정말로 이 일이 지루하다,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재미있어요. 평생을 그렇게 재밌게 했어요. 이게 내 일이니까. 내 몸 아프다고 쉬고 그런 것도 없이, 약을 먹더라도 나와서 장사를 했어요. 자녀들이 졸업할 때까지만 하자, 직장에 다닐 때까지만 하자, 결혼할 때까지만 하자-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70이 됐네요. 그렇게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이었어요.”

오로지 집과 식당만 오가던 장대표의 삶에 조금 다른 변화가 온건 4년 전 무렵이다. <밀어 밀어>,<지나야> 등의 히트곡을 지닌 '장구의 신' 트로트 가수 박서진의 팬이 되면서 삶에 또 다른 열정이 생겼다.

"「닻별」이라고 팬클럽에도 들었어요. 젊은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고생하며 자기 꿈을 이룬 게 얼마나 기특하고 대단한지 너무 감동이더라고요. 덕분에 이 나이에 콘서트라는 곳도 가보고 다 같이 노래도 부르며 응원도 해보고 공연 가는 김에 여행도 해보고 좋은 노래도 들으면서 아주 재밌게 살고 있어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평생을 바쁘게 살아온 장금란 대표에게 마음의 휴식처가 되어준 존재가 있어 다행일 따름이다.

세월의 낭만에 대하여

지하도 상가 식당가에는 <지연식당> 외에도 다른 분식점들이 있다. 인터뷰 중에도 실제 서로 필요한 재료를 빌리는 훈훈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동종 업계라 조금은 경쟁의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이곳은 모두가 가족 이상의 동료이자 친구라고 한다.

“몇십 년 동안 집보다 이곳에서 생활한 시간이 더 길어요. 그 세월을 함께 했으니 당연하죠. 예전에는 더 있었는데 천안역 일대 상권이 줄어들면서 사실 식당도 많이 문 닫았어요. 이제는 지금까지 남아서 함께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서로 고맙고 의지가 되고 그래요.”

무엇보다 장대표를 지금까지 있게 한 것은 오랜 단골손님들이다. 그 옛날 지하상가로 옷을 사러 왔다가 배가 고파 들러서 맛있게 먹었던 중학생이 어느새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 ‘어머니, 제가 사실 옛날에 여기 왔었는데 그때 그 맛 그대로라서 감동했어요.’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제가 어떻게 이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있겠어요. 더 정성을 들여야죠. 그분들에게는 이곳이 추억의 장소잖아요. 제가 아무리 예전보다 나이가 들었어도 단골손님들을 보면 힘이 부쩍 생겨요. 이 식당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라도 제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오래된 식당은 그 역사만큼의 낭만을 품고 있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트렌디한 메뉴는 아닐지라도 푸근하고 정겨운 이곳에서 먹는 한 끼는 충분히 만족스럽게 맛있었다. 몽글몽글 향수가 차오르는 날에는 장금란 대표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따뜻한 밥으로 마음의 허기까지 편안하게 채워보자.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