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피워낸 당신
너를 보다 플라워 

139번째 이야기 / 2023.11.30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너무나 유명한 시, 김춘수의 「꽃」이다. 이 시 구절처럼 우리는 종종 아름답고 귀한 존재를 꽃에 비유하곤 한다. 꽃이 지닌 다채로운 색깔과 모양, 그리고 향기는 오감의 향연 속에서 강렬한 영감을 일깨운다. 무한하지 않기에 더욱 귀중하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이런 꽃을 주며 당신이란 존재가 내게 가진 의미를 표현하고자 한다. 사랑, 존경, 감사 또는 위로까지도.

천안역 지하상가의 <너를 보다 플라워> 김현진 대표는 이런 꽃의 의미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열과 성을 다해 고객을 대하고 있다.

꽃 너머의 당신을 보다

튤립과 나뭇가지의 모양으로 예쁘게 디자인된 <너를 보다 플라워>는 상호를 지은 이유부터 시적이다.

“본격적으로 매장을 운영하기 전 아직 꽃을 배우고 있을 때 지인들이 저에게 꽃 주문을 종종 부탁했어요. 그런데 단지 몇만원어치 무슨 색의 꽃을 줘- 이런 것이 아니라 받을 사람에 대해서 저에게 설명을 먼저 하더라구요. 예를 들어 우리 엄마는 본인을 위해 살아본 적 없어서 오로지 엄마만을 위한 꽃을 해주고 싶다, 혹은 여자친구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데 이런 이유로 선물하고 싶다, 이렇게요.
꽃다발을 만들면서 마치 전 만나보지도 못한 그 사람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이 꽃을 받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만들다보니 저 역시 그분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꽃을 보면서 받을 사람까지도 동시에 보게 된 거죠.”

이런 귀중한 체험은 가게명에 영감을 준 것을 넘어 플로리스트로서 길을 가는데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처음 2016년도 당시엔 그저 작업실로 이용하고자 비교적 저렴한 사용료로 임대가 가능했던 천안역 지하상가를 선택했다. 하지만 작업물을 인스타나 블로그에 올리면서 점점 입소문이 나고 꽃을 주문하는 발길도 늘면서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매장을 할 생각이었으면 아마 여기에 열 수 없었을 거예요. 매장 내에 수도시설이 없기 때문에 새벽부터 꽃 시장을 다녀오고 또 매장에 오면 다시 두 시간은 무거운 물을 날라야 하거든요. 고되지만 여기까지 찾아와주시는 고객님들을 생각하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요. ”

그대의 행복을 위해

김대표는 이 일을 하며 비로소 주고 받는 선물에 대한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전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 이벤트나 기념일 등을 세심하게 챙기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여기 오시는 고객님들은 그런 저와 완전 반대 성향인 분들이신 거예요. 가족을 위해 연인을 위해 친구를 위해 얼마나 진심이신지 몰라요. 전 정당한 대가를 받고 해드린 것 뿐인데도 감사하다며 때때로 커피나 쿠키 같은 선물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비로소 저도 ‘아 이래서 사람들이 선물을 하는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이젠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종종 선물을 해요. 고객님들 덕분에 ‘주는 기쁨’을 깨달은 거죠.”

그때부터 김대표는 어떻게 하면 받을 사람이 기쁠 수 있을지 더욱 고심했다. 고객이 원하는 바는 내심 있지만 니즈를 정확히 못 말하는 경우 편한 대화를 이끌기 위해 수많은 스몰톡 스킬을 익혔고, 그럼에도 잘 파악이 안되면 고객 동의하에 받을 분의 인스타나 스토리를 훑어보며 평소 어떤 색감을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정성까지 들인다.

무엇보다 김대표가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꽃이 최대한 싱싱하게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관리하는 것이다. 매일같이 무거운 물을 길어 나르는 어려움은 있지만 날마다 새 물로 갈아주고 꽃 하나하나 컨디셔닝 하는 작업을 빼놓지 않는다. 그 덕분인지 여기 꽃이 오래 간다며 종종 오는 고객들을 볼 때마다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큰 보람을 느끼곤 한다.

매순간 고객 니즈 충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김대표가 추천하는 최근 유행하는 제품은 무엇일까.

“최근에는 꽃다발과 화병을 같이 판매하는 세트가 잘 나갑니다. 꽃다발을 받았지만 마땅한 화병이 없어 보관이 곤란한 경우가 있는데 같이 선물해드리면 정말 센스있다는 평을 들으실 수 있을거예요. 저는 꽃다발을 만들 때 일부러 화병에 꽂아보면서 최대한 예쁜 라인이 나올 수 있도록 미리 세팅해보곤 해요.”

식물이 알려준 삶의 철학

꽃이 메인이지만 일반 식물 화분들도 점차 취급하게 되며 또 다른 생소한 분야에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특히 과습이 주요 과제였다. 여러 식물들을 죽여도 보고 살려도 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물을 주면 내 기분이 좋고 새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어서 매일매일 주니 식물은 버티질 못하고 뿌리가 썩어버려요.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 같아요. 정작 받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은데 자기만족으로 멋대로 주고선 상대가 고마워하지 않으면 서운하고 화가 나죠. 이런 일방적 통행은 이기적인 애정이구나 하고 느끼게 됐어요.
매일 흙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시점에 적당한 물을 주는 것이 진정으로 식물을 아끼는 것인데 말이에요.”

혹자는 어차피 시들어 죽을 꽃을 왜 사냐는 비판도 한다. 하지만 김현진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저도 꽃들을 종종 집에 데려가는데 생활을 하며 잊고 있다가도 무심결에 꽃을 딱 보는 순간, 그 몇 초 동안 저는 온전한 힐링을 받아요. 제가 무언가 대단한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요. 생명이 스러질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몫을 다 하는 꽃에게서 저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요. 절대 약한 존재가 아니에요. 뿌리가 없는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해 생을 유지하거든요. 피고 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생의 순환이고 다음을 위한 기약이라 생각해요.”

꽃을 보며 사람을 느끼고 꽃을 통해 삶을 배운다는 김현진 대표의 맑고 예쁜 에너지는 그녀가 정성들여 빚어낸 작품들 속에서도 여지없이 느껴진다. 10주년이 되면 소중한 단골 고객님들과 소소한 파티도 함께 열고 싶다는 김대표는 오늘도 열심히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새벽같이 꽃시장을 방문하고 무거운 물을 나르고 거친 꽃줄기를 다듬고 있을 것이다. 애정 어린 마음이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날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 @icu_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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