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인테리어
황실 홈패션

99번째 이야기 / 2022.05.23

우리는 매일 옷을 바꿔 입는다. 계절에 따라, 유행에 따라, 심지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는 패션과 달리, 한번 사면 오래 사용하게 되는 가구나 인테리어는 원할 때마다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이럴 때 홈패션은 좋은 대안이 되어준다. 적은 비용으로도 자신의 개성을 살린 분위기로 손쉽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천안역 지하도상가에 수십 년 동안 홈패션을 전문으로 해온 대표님이 새롭게 매장을 오픈해 찾아가 봤다. 간판 대신 화사한 플라워 패턴 패브릭으로 장식한 260호 <황실 홈패션>이다.

흥흥발전소

동생을 위해 차린 첫 가게

가게 이름이 적힌 간판은 없어도 워낙 화사한 인테리어 소품과 알록달록 예쁜 원단들로 꾸며진 곳이기에 지하도상가 안에서도 유독 눈에 잘 띄는 <황실 홈패션>. 예전 매장의 이름을 가리기 위해 붙인 강렬한 색상의 플라워 패턴은 오히려 멀리서도 이곳을 돋보이게 만들고, 홈패션이라는 특징을 단번에 표현해 주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홈패션은 패브릭을 이용해 생활공간을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침구류 등을 만드는 분야를 말한다. 이불, 커튼, 쿠션은 물론 사각 티슈 커버, 앞치마, 가방, 파우치 등 생활용품이나 패션용품까지 폭넓게 포괄하기에 패브릭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룬다고 보면 된다.

이미 30년 가까이 홈패션 일을 해온 대표님이지만, 가게를 차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업할 공간만 있다면 의뢰를 받아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따로 가게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그런 그녀가 이제 와서 천안역 지하도상가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친동생인 <황실 십자수> 대표님 때문이다. 심성이 착하고 여린 데다 최근 어려운 일을 겪었던 동생을 곁에서 도와주며 보살피고 싶은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 사실 <황실 십자수> 대표님이 십자수를 시작하게 된 것도 다 언니 덕분이었고, 두 분야가 완전히 동떨어진 것도 아니기에 둘의 만남은 오히려 시너지를 낼 수 있을 터였다.

황실

오픈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황실 홈패션>은 187호 <황실 십자수>의 건너편인 260호에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날, <황실 십자수> 대표님은 기자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언니 덕분에 어려운 일도 전부 해결하고, 바로 가게 앞에만 나가면 든든한 언니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그리고 저희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 중 홈패션까지 같이 원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이제는 바로 원단을 고르거나 자세한 상담을 받을 수 있어서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여러 가지로 언니가 이곳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대표님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가구들

어떤 제품이든 그에 딱 맞는 디자인을 완성해 내는 <황실 홈패션> 대표님. 그중에서도 가장 전문 분야라 할 수 있는 것은 소파 커버다. 원단 소파라는 것이 거의 없던 20여 년 전엔 낡거나 제구실을 다한 가구는 그냥 버려지기 일쑤였는데, 이런 것들을 오히려 원하는 원단으로 내 입맛에 맞게 바꿔 더 예쁘게 사용해 보면 어떨까란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일반 의자 커버나 쿠션 커버와 달리 소파는 구조 파악과 치수 측정, 패턴 작업, 재단, 재봉 등 까다로운 공정을 거친다. 특히 팽팽하면서도 탈착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모양이 맞으면서 지퍼 처리까지 되어야 한다.

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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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구의 구조에 딱 맞춘 ‘패턴 작업’이다. 홈패션을 오래 해본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는 부분인데, 대표님은 디자인 사무실에 다니던 경험 덕분에 쉽게 터득할 수 있었다. “홈패션을 시작하기 전 디자인 사무실에 다닌 적이 있어요. 거기서 마네킹을 앞에 두고 원단을 붙인 뒤 마네킹 모양대로 패턴을 뜨는 작업을 했었죠. 그걸 홈패션에 응용해서 저 혼자 소파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먼저 비닐로 패턴을 뜨고 TC라는 가장 저렴한 원단을 이용해 미리 시안을 만들어 봐요. 작업을 이중으로 하는 거라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더 걸리지만 그렇게 해야 더 정교하고 정확한 결과물이 나오죠.”

완벽하게 만들어질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 탓에 완성된 작품을 본 손님들은 하나같이 만족했다. 더는 가구를 버릴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버려진 가구를 주워다 대표님을 통해 리폼 후 사용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그녀의 실력은 빠르게 소문이 퍼져 계속해서 작업이 밀려들었지만, 젊을 때 죽을힘을 다해 벌자는 신조를 가진 그녀였기에 잠을 줄여가며 일을 했다. 손이 많이 가는 소파 커버를 3일에 하나씩 만들어 냈다. 손은 망가지고 허리도 아팠지만 완성해낼 때마다 느껴지는 희열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몸은 고돼도 일이 재밌고 행복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것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한 수입 가죽 소파였어요. 저도 욕심이 나서 며칠을 고생한 끝에 주름 하나까지 원래 가죽 패턴 그대로 만들어냈는데요. 의뢰하신 분이 결과물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시며 소파에 맞춰 벽지까지 새로 바꾸시고 티슈 커버와 쓰레기통까지 같은 스타일로 만드셨어요. 얼마나 마음에 드셨는지 제가 제시했던 가격보다 몇 십만원이나 더 주셨던 기억이 있네요. 저도 정말 뿌듯했죠.”

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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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 패턴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일이 힘들어지지만, 신기하게도 그냥 한번 만들면 딱 맞게 나왔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가사 시간에 뭘 만들면 그냥 생각한 대로 만들어도 딱 맞게 되더라고요. 저도 신기했는데 엄마를 닮은 것 같아요. 엄마가 의상 쪽 일을 하셨거든요. 집안 내력인가 봐요.”

소파 커버 하나를 작업하면 60만원 정도를 벌었다. 당시 일반 성인 남자의 월급이 150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수고스러워도 꽤 괜찮은 수입이었다. 점차 원단 소파도 많이 출시되고 다양한 컬러의 가구들이 나오면서 소파 리폼을 하려는 사람은 사라져갔지만, 이불이나 커튼,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의 인기는 꾸준했다. 그래서 잠시도 쉬지 않고 더 악착같이 일했다.

“제가 욕심이 많아서 돈도 야무지게 모았었어요. 결혼하면서 애들이 생기고 난 후엔 아이들 보험도 전부 100세까지 체계적으로 들어놓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한 뒤 꾸준히 일을 했죠. 한 5년 동안은 잠을 3시간씩 자면서 미싱을 돌렸어요. 몇 천원 벌이인데도 힘닿는 데까지 하고 싶었고 집에서 애를 키우며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싶어서 오히려 감사했어요. 그렇게 모은 돈에 대출을 더해 집도 한 채 두 채 마련했는데, 제가 어느새 다주택자로 되어 있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작년에 거의 다 처분했어요. 다 합해봐야 얼마 되지 않는 돈인데 세금만 엄청나게 나오고 힘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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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틈틈이 집안일을 해가며 작업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매장을 매일 지켜야 하다 보니 틈날 때마다 가방이나 티슈 커버 등을 만들고 있다는 대표님은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고. “예전엔 손님들이 가져온 것을 보며 그대로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매장에서 판매할 소품을 만드는 건 제가 알아서 상상하며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기에 머리를 더 써야 해요. 성격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그게 제 숙제이긴 하지만, 또 다른 도전이기에 재미있어요.”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그녀이기에 힘든 일이 있을까 싶은데, 간혹 고뇌에 빠질 때도 있다고 한다. “일 자체는 너무 재미있고 좋은데 디자인이 잘 안 나올 때는 정말 힘들죠. 원단을 고를 때에도 무조건 예쁘다고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뭔가가 만들어지겠다 싶어서 가져오는 건데, 생각한 대로 디자인이 나오지 않거나 레이스가 잘 박히지 않고 마음대로 울고 그러면 이걸 해결해낼 때까지 아무것도 못해요. 아들도 저보고 워커홀릭이라 해요. 문제를 해결하려 집중하다 보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8시간이든 10시간이든 일하는 저를 발견하거든요. 그래도 해결하고 나면 굉장한 뿌듯함이 있죠. 그냥 제품을 가져다 파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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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성향까지 담아내는 맞춤 디자인

지금도 예전부터 알고 지낸 단골들이 있기에 그녀의 재봉틀은 계속해서 돌아간다. <황실 홈패션>의 가장 큰 장점은 남들이 못한다는 어떤 디자인도 어떻게든 다 만들 수 있다는 것. 불가능한 것은 없다.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디자인도 이곳에선 주문하는 대로 뚝딱 만들어지기에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다.

무엇보다 손님의 성향을 반영한 맞춤 디자인을 제안해 주기도 하니 그 누가 싫어할까. “예전에는 처음 주문을 받으면 무조건 그 집에 방문했어요. 스타일을 알아야 하니까요. 손님마다 성향이 있고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말로 표현 못 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말로 설명한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평소 좋아하는 성향을 제대로 알아야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들어드릴 수 있으니 정 안되면 집안 곳곳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하죠. 그러면 대략 그분이 원하는 디자인이나 색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어요.”

이렇게 꼼꼼하고 세심하게 작업하기에 한 번 대표님께 의뢰했던 고객은 계속해서 찾아오게 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세계적인 국내 아이돌 그룹의 인테리어도 직접 해줬을 정도로 인맥이 넓어졌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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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동생이 일하는 동안 곁에서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대표님은 무엇보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크다. “남들은 건강을 신경 쓰며 운동할 나이에 전 여전히 일을 하고, 한번 일을 손에 잡으면 헤어 나올 줄 모르고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걱정이 돼요. 요즘은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고, 아직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감사하고 그래요. 앞으로는 큰 욕심내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과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싶어요.”

또 더 나이가 들면 봉사를 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제가 늙어서도 이 기술을 쓸 수 있다면 봉사를 하며 지내고 싶어요. 어차피 계속해서 돈을 벌 수는 없는 거고, 늙어서까지 돈에 혈안이 되어 살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기는 또 싫고요. 예전부터 엄마가 ‘애란원’이라는 유명한 미혼모 보호시설에 남는 원단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서 보내시곤 했어요. 팔아서 보태라고요. 저 역시 그런 엄마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만, 제 기술을 누군가에게 가르치거나 제 기술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어 봉사할 생각이에요.”

그저 일이 좋고, 화목한 가정과 가족들이 있어 여기까지 달려왔다는 대표님은 이제 동생이 있는 천안역 지하도상가에 새 둥지를 틀고 새로운 이웃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 사는 느낌이 드는 지하도상가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매주 월요일마다 압력밥솥에 구운 계란을 만들어 주변 이웃들과 나누기도 한다. 이렇게 정이 많고 베풀 줄 아는 자매는 오늘도 지하도상가의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비록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가구 및 인테리어 용품들이 나오고 있다고는 하나,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손쉽게 집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홈패션의 인기는 여전하다. 특히 팬데믹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이템이라는 매력에 홈패션을 찾는 이들도 많다.

다가오는 여름, 집안 분위기를 새롭게 바꿔보고 싶거나 새로운 인테리어로 활력을 더하고 싶다면 천안역 지하도상가를 방문해 보자. 나도 잘 모르는 내 마음에 쏙 드는 홈패션 아이템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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