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문화의 연결고리,
천안볼트 문화예술협동조합

95번째 이야기 / 2022.05.11

‘대학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천안에는 많은 대학이 밀집되어 있고, 많은 청년들이 있다. 그만큼 일찍부터 자신의 꿈에 도전하는 청년작가들도 많은데, 안타깝게도 공간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안정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작가들은 많지 않다.

천안 원도심에 있는 문화예술협동조합 <천안볼트> 역시 재개발로 자리를 잃은 작가들이 모여 직접 만든 자립 공간이다. 많은 작가들에게 공간 걱정 없이 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특별한 그곳을 찾아가 봤다.

볼트

작가들의 희망 공간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든 <천안볼트>는 천안와락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일상서재> 이의용 대표님을 포함한 4명의 작가가 의기투합해 만든 곳이다. 당시 천안 중앙시장 인근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재개발로 인해 비슷한 시기에 작업 공간을 옮겨야 했고,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절실함으로 이곳에 오게 됐다.

당시 이곳은 ‘천안볼트’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운영되다 폐업한 공장 부지였다. 다행히 그 부지를 매입한 주인은 문화예술 분야와 복합문화공간에 많은 관심을 가진 분이었고, 덕분에 긴 임대 기간과 비교적 적은 임대료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네 명의 작가는 부품을 서로 연결해 주는 ‘볼트’처럼 자신들도 함께 연결되어 협업하고, 사람들과 문화예술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자신들의 일과도 잘 부합하기에 <천안볼트> 이름을 그대로 살린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이의용 대표님은 여럿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사실 저는 인테리어를 해본 적도 없고, 시작조차 엄두가 나질 않았었어요. 그런데 마침 함께 시작했던 작가님들 중 목공과 전기를 다루실 수 있는 분이 계셨고, 덕분에 이곳의 80% 이상은 저희가 직접 셀프 인테리어로 진행했어요. 천장 페인트칠까지 다 저희가 했죠. 고생도 엄청 했지만 그만큼 더 애착이 가는 곳이 됐네요.”

초창기엔 여러 작가들이 입주해 책방, 카페, 스튜디오, 공방, 빈티지샵, 전시장 등 다양한 공간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많은 작가들에게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작업실이 생겼고, 플리마켓과 같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민들과 만나는 기회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공간에 계속해서 변화가 생겼다. 처음 이곳을 함께 만들었던 멤버도 이의용 대표님과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임기환 대표님, 이렇게 두 명만 남아 공동 운영 중이며, 공간 리뉴얼도 여러 번 거쳤다.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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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작가라면 누구나 환영

새 단장을 마친 지금의 <천안볼트> 공간은 크게 1층 독립서점과 2층 복합문화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2층의 복합문화 공간은 다시 4개의 입주 공간, 그리고 누구나 필요할 때 대여해서 사용할 수 있는 대여 공간으로 나뉜다.

입주 공간은 작가들이 개인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임대해 주는 공간이다. 현재 두 개의 공간이 남아 있어 입주 모집 중인데, 작가들의 입주 조건은 딱 하나!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이기만 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나이 제한도 없고 거주 지역 제한도 없다. 월세로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단체에 의뢰가 들어오는 것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월세 이상 수입이 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기에 부담도 적다. 또한 공용 세미나실을 통해 전시회 같은 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므로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많지 않은 청년 작가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조건이 되어준다.

대여 공간은 스튜디오, 갤러리, 세미나실로 구성되어 있다. 스튜디오는 3명의 사진작가와 연계되어 있어 예약 시 사진촬영이 가능하며 공간을 대여해 셀프로 촬영할 수도 있다. 보통 대학생들이 졸업작품을 찍거나 친구들끼리 자유롭게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도 방문한다고.

갤러리와 세미나실은 <천안볼트> 자체적으로 기획을 해 전시나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일반인 누구나 손쉽게 대관을 해서 이용할 수 있다.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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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차있는 두 개의 입주 공간에는 양말목·위빙 공예를 선보이는 <모루>와 퍼스널 컬러·색채연구소 <휴먼컬러컨설팅>이 있다. 꽤 오랜 시간 <천안볼트>와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은 이미 천안에서 꽤 유명하다.

먼저 양말목 공예활동을 하는 <모루>의 작품은 <천안볼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직 조금은 생소한 분야이기도 한 양말목 공예는 양말을 만들 때 마지막 단계에서 잘려 버려지는 동그란 링 모양의 섬유 조각을 재활용해 다양한 생활 소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공예다.

지구에 해가 되는 산업폐기물을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해 환경을 보호하는 친환경 활동이기도 하고, 귀엽고 알록달록한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또한 초보자도 누구나 쉽게 배우고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아 최근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고. 원데이 클래스부터 자격증반까지 다양한 수업이 운영되므로 궁금한 사항은 인스타그램(@morooo105)으로 문의해 보자.

색채연구소 <휴먼컬러컨설팅>은 개인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면서 단점은 가려주는 퍼스널 컬러를 찾아주기도 하고, 브랜드나 제품, 인테리어, 공간 연출 등 색채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분야의 컨설팅을 진행하기도 한다. 또한 컬러테라피스트 및 퍼스널 컬러리스트 양성 과정도 있어 방문 예약은 필수다. 자세한 문의는 인스타그램(@gyu_rim)을 통해 할 수 있다.

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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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러도 괜찮은 공간

<천안볼트>는 큰길 쪽으로 커다란 간판이 있긴 하지만, 건물 외관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단번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조심스럽기도 한데, 한번 들어가 그곳의 분위기를 경험하고 나면 오히려 쉽사리 다른 곳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더 정감이 가고 오늘은 뭐가 달라졌으려나, 어떤 새로운 것들이 반겨주려나 기대감마저 든다. 특히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독립서점 <일상서재>는 조용하고 잔잔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진다. 북적이는 대형 서점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기분이다.

현재 <천안볼트>의 모든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는 이의용 대표님은 이곳을 서툴러도 괜찮은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공간 홍보를 하려면 유명한 작가님을 초빙해서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빨라요. 하지만 저는 이미 유명한 분들의 전시를 하기보단 주변에 대학이 많기에 대학생들의 전시로 더 채우고 싶어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고, 이런 기회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그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싶거든요. 서툴러도 괜찮은 이 공간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꿈에 당당히 도전할 수 있도록, <천안볼트>가 그런 곳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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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작가들이 자생하는 공간’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제가 몇 년간 작가 생활을 하면서 개인 사업도 해보고, 지원도 받아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봤는데 항상 어려움이 컸어요.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일은 하고 돈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고요. 그런 일들을 다른 작가님들은 겪지 않으셨으면 좋겠더라고요. 이곳에서 다 같이 활동하며 교류하다 보니 활동에 대한 노하우나 팁도 같이 공유할 수 있고, 많은 정보를 나눌 수 있어 확실히 도움이 많이 돼요. 개인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시너지 효과도 있고요. 물론 제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에 계신 모든 작가님들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고 그런 역할을 <천안볼트>가 계속해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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