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으로 빚어낸
정직한 맛
공설방앗간

148번째 이야기 / 2024.2.28

검푸른 어스름이 남아있는 새벽, 하얀 증기를 뿜으며 고요한 시장의 정적을 깨는 존재가 있다. 언제나 시장의 첫 불빛을 밝히는 곳, 바로 방앗간이다. 클릭 몇 번, 터치 몇 번이면 새벽 배송도 가능한 시대지만 발품을 들여 방앗간에 가는 이유는 손수 재배하거나 구한 작물로 방앗간에 맡겨서 만들어낸 결과물은 일반 공산품과는 달리 그 때깔과 향부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60년대에 처음 문을 연 <공설방앗간>은 오랜 경험과 신용을 바탕으로 58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2대째 고객들에게 정성 가득한 좋은 품질의 맛을 제공하고 있다.


대를 이어 쌓아 온 값진 유산

현재 <공설방앗간>을 운영 중인 이병욱 대표는 1대 조수형 할머님의 며느리로서 배우자와 함께 업장을 물려받았다. 22년 천안 와락 매거진을 통해 재미난 입담을 들려주신 초대 대표인 조수형 할머님은 88세의 연세에도 여전히 부지런함을 유지 중이며 종종 매장에 나와 일도 살피시곤 한다.

“남편이 장남이기도 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다 보니 방앗간 일을 돕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2대째 이어받게 되었어요. 어머님이 워낙 성실하고 신용이 좋으셨던 분이라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늘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저 또한 그 마음가짐 그대로 최선을 다해 이 방앗간을 30년째 하고 있습니다.”

이대표가 본격적으로 이어받은 후 점차 떡의 종류를 늘려 지금의 다양한 떡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떡을 만들면서 익숙지 않다 보니 처음엔 여러 시행착오도 많았다. 믿을 것은 오로지 본인의 ‘감’이었다. 특히 찹쌀떡의 적절한 찰기를 맞추는 것이 어려웠는데 수많은 도전과 연습 끝에 마침내 완벽한 질감과 형태의 떡을 만들 수 있었다.

“어머님이 평생을 고생해서 일궈온 방앗간인 만큼 저도 그 정신을 물려받아 우직하게 몸으로 부딪히며 하나하나 익혔어요. 떡 작업은 말로는 설명이 힘든 ‘감’이 굉장히 중요한데 다행히 그 부분에서 제가 괜찮은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 정도면 적당한 간이 되겠다, 혹은 이 정도 물을 잡으면 적당한 식감이 되겠다-이런 것들에 대한 감이에요. 덕분에 크게 돌아가지 않고 비교적 맛의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었어요.”

조수형 할머님께서 쌓은 단단한 토대 위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이란 기둥을 세워 더욱 튼튼해진 지금의 <공설방앗간>이다.

스스로가 자부하는 ‘착한 가게’

떡 주문이 있는 날이면 이대표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쌀을 깨끗이 씻고 불리고 빻아서 고운 가루를 내어 반죽을 만들고 모양을 내고 찌고 식히고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손길이 필요한 고된 작업이다. 이제는 인간 저울이 되었을 정도로 오랜 세월 모든 작업이 몸에 스며들었다. 주문떡을 마치면 오전 중으로 일반 소매떡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오후에는 고추와 기름 작업을 진행하고 찾아온 고객들과 정을 나누다가 매장이 문을 닫는 시간은 9시. 힘들지만 지루할 새 없이 그저 성실하고 묵묵하게 살아온 30년 세월이다.

“저희는 재료를 정말 풍족하게 아낌없이 넣어요. 영양떡 같은 경우 다른 곳보다 3분의 1은 양이 많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밤이나 쑥 같은 재료도 사지 않고 1년 동안 쓸 것을 직접 채취해서 다듬고 냉동고에 저장해서 쓰고 있어요. 가격 면에서도 저희는 자릿세나 인건비가 나가지 않으니까 비교적 합리적으로 저렴하게 드릴 수 있죠. 그래서 전 스스로 저희 방앗간을 ‘착한 가게’라고 생각하고 고객과 신의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용을 잃지 말자’가 운영 철칙이라는 이대표는 꼼꼼한 일 처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약 기름을 짠다면 들기름인지 참기름인지 겉으로는 구분이 어려우니 하나하나 제가 다 표시해드리고 있어요. 또 가지고 가실 때 병끼리 서로 부딪혀 깨지지 않도록 신문지로 한 병 한 병 잘 싸서 드려요.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요소들이 모여 신뢰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다른 곳은 안 그러던데 여기 오면 해주더라-하며 한번 오신 고객님께서 단골이 되고 차분하게 일을 잘한다고 인정해 주시고 그럴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그대로, 그리고 새롭게

58년간 수많은 추억과 함께 이어져 온 <공설방앗간>은 24년 또 한 번의 변화를 맞게 된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3대 대표직을 맡을 아들과 함께 운영할 예정인 것이다.

“군대 제대 후 곁에 두고 가르치다 보니 성실하고 감도 있고 아주 잘해요. 현재는 다른 곳에서 방앗간을 별도로 운영 중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이 방앗간을 물려줄 예정이에요. 30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는데 저도 나이가 있다 보니 점점 몸에 무리가 오네요. 더 늦기 전에 새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뭐든지 빠르게 바뀌는 현 세태 속에서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신념을 지키는 노포의 가치는 더욱 귀하고 값지다. 지금처럼만 변함없이 방앗간이 계속되길 바란다는 이대표의 꿈은 소박하지만 그 유지를 위해 들여야 할 노력과 정성은 한없이 깊고 아득하다. 비록 예전만큼 사람으로 붐비는 역전시장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희망과 열정은 계속 피어나고 있다.

온갖 먹거리로 가득한 시대지만 클래식은 영원한 법 아니던가. 향기로운 참기름도, 붉고 선명하게 빛나는 고춧가루도, 먹음직스러운 떡도 모두 한국인의 일상에 깊게 자리 잡은 전통의 산물이기에 방앗간은 오늘도 바쁘게 돌아가며 매일 아침 일찍 시장을 깨운다. 이제 곧 3대에 걸쳐 운영될 <공설방앗간>의 새하얀 수증기가 지금처럼 오래오래 시장 공기 속에 정겹게 녹아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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