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가에서 만나는
작은 베트남
깜언

82번째 이야기 / 2022.02.14

여행은 익숙함에서 벗어난 설렘과 자유, 낯섦이 주는 떨림과 색다른 감동을 두루 느낄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특히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긴 여운을 만들고, 그와 비슷한 곳만 가도 추억 속 감정으로 북받쳐 오르게 한다.

이런 경험은 중독성이 강해 주기적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은데, 코로나가 하늘길을 막으며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힘들어지자 최근엔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줄 이국적인 분위기의 이색 공간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천안역 지하도상가에도 잠시나마 베트남 여행의 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이 있다. <깜언>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카페로, 어떤 매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 찾아가 봤다.

깜언

베트남의 매력에 푹 빠져 시작한 곳

한 번이라도 베트남으로 여행을 다녀왔던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깜언>은 권대선 대표님이 직접 베트남에서 느꼈던 감동과 추억을 담아 만든 곳이다. “젊었을 때부터 수십 년을 일해왔는데 아이들이 다 커서 자리를 잡고 나니 저에게 좀 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마침 제 동생도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큰 아이도 베트남에서 일을 하고 있던 터라 여행도 할 겸 3개월 정도씩 왔다 갔다 한 적이 있어요. 자주 가다 보니 베트남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곳에 한국 전통찻집을 차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하회탈이나 민속 인형 등 한국 전통 공예품과 장식품을 잔뜩 사서 베트남으로 갔죠. 그런데 웬걸, 하필 그 시기에 베트남이 주목을 받으며 그곳에서 사업을 하려는 한국 사람들이 각지에서 몰려왔어요. 그곳은 건물을 한 층만 임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으로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덩달아 임대료도 천정부지로 뛰어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더라고요.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 비자 만료 기간이 다가왔고, 결국 가져갔던 장식품은 그곳 분들에게 선물로 나눠드리고 전 오히려 베트남 공예품과 기념품 등을 다시 사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렇게 한국에 온 대표님은 마침 천안역 지하도상가 안 지금의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베트남에서의 좋았던 기억을 함께 나눌 카페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이 천안역 지하도상가는 저와 인연이 깊어요. 오랜 직장 생활 끝에 2004년 처음 천안에 와서 시작한 가게가 바로 이곳이거든요,” 그때도 테이크아웃 커피와 쥬스 등의 음료를 판매하는 가게를 열어 7년 정도 운영했다. 그러다 시청이 불당동으로 옮겨가고 신세계 백화점이 들어오면서 상인의 상당수가 자리를 옮겼고, 권대선 대표님 역시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가 베트남에 가시게 된 것. 그리고 2019년, 다시 지하도상가에 돌아왔다. “이곳을 떠난 지 9년 만에 돌아온 셈이죠. 그런데 2019년 11월에 카페를 오픈하고, 3개월 만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깜언

갑작스러운 코로나로 힘들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다행이라는 그녀였다. “비록 매상이 줄긴 했지만, 한국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에요. 우리나라는 방역지침이나 거리두기 단계 같은 것이 바뀌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미리 알려주잖아요. 그런데 베트남은 바로 하루 이틀 안에 봉쇄되고 그러거든요. 그렇다고 임대료를 안 내는 것도 아니고요. 만약 베트남에서 가게를 하고 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죠. 최적의 시기에 잘 돌아왔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이전만큼은 아니어도 요즘은 찾는 단골 분들도 많아지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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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로 ‘감사하다’는 뜻을 가진 ‘깜언(cám ơn, 感恩)’이라는 가게 이름도 이곳을 찾는 고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지었다. 영어의 컴온(Come on)과도 비슷해 간혹 오타로 오해하는 분들도 계시다지만, 덕분에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가게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 베트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녹색과 빨간색, 금색을 조화롭게 사용하고, 베트남의 국화인 연꽃 패턴의 원단도 떼어와 직접 쿠션과 테이블보, 전등갓 등 소품으로 만들었다. 그 어느 것 하나 대표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고, 베트남의 분위기가 한층 살아났다.

깜언

여유로운 베트남의 기억

이렇게 베트남의 정서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던 비결에는 권대선 대표님의 경험이 한몫을 한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베트남은 여름만 있어서 그런지 모두가 느긋해요. 과일도 저렴하고, 삼모작이라 쌀도 넉넉하니 서두르거나 조급한 것이 없죠. 나이가 들다 보니 그런 여유가 더 좋게 느껴지고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그곳에 있으면 쉬어가는 느낌도 들고, 힐링이 된달까요?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우고 왔어요.”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답게 커피도 그중 하나였다. “그곳은 열대지방이라 맑은 날씨에도 갑자기 비가 무섭게 쏟아지고, 또 금방 맑아지고 그래요. 그렇게 비가 쏟아질 때 목욕탕 의자 같은 작은 의자로 마련된 노천카페에 앉아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핀(Phin) 커피를 마실 때의 운치란 이루 말할 수 없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여유가 좋아서 많은 분들이 베트남을 찾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핀 커피’란 잔 위에 베트남 전통 방식의 커피 추출 도구인 핀(Phin)을 놓고 내린 진하고 고소한 커피다. 우리가 즐겨마시는 아메리카노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진하고 풍미가 강한 그 매력에 빠져 <깜언>에서도 핀 커피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베트남의 분위기를 꼭 닮은 인테리어에 베트남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덕분에 천안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의 방문도 많다. 가끔 베트남 다문화 가족이 방문해 한국인 남편과 아이에게 베트남에 온 것 같다며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보면 이 카페를 차리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셨던 분들은 그곳 생각이 많이 난다고 좋아하시고, 베트남을 안 가보신 분들도 인테리어를 보고 따뜻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좋아하시는데요. 그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보람되고 뿌듯한지 몰라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죠.”

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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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지하상가 안에 있는데도 독특한 분위기와 상냥하고 친절한 대표님의 매력에 이끌려 단골이 된 어르신들도 많고, 입소문과 인터넷 후기를 보고 찾아오는 젊은 층도 점점 많아지고는 있지만, 상인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대표님은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지하도상가가 안타깝기만 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예전에 다니던 학교, 동네, 이런 추억 속 장소들을 다시 찾아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고 싶어지잖아요. 요즘 이곳은 번화가였던 예전의 천안역을 떠올리며 자녀와 함께 찾아오는 가족들이 많은데, 달라진 지금의 모습에 놀라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죠. 이제 역사도 새로 짓고 그러면 다시 좋아질 거라 믿고 있어요. 하루빨리 예전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곳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대표님은 손님이 오지 않는 시간은 손뜨개 수세미를 만들며 보낸다. “학생 때부터 뜨개질을 엄청 좋아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서 손님이 없는 시간에 틈나는 대로 만들고 있어요. 뜨개질을 하고 있으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거든요. 하나씩 만들어서 진열해뒀더니 사가시는 분들도 계시네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작품들은 어느새 가게 한편을 아름답게 채웠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그녀의 마음을 닮았다.

깜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카페가 되었으면 해요.”

<깜언>을 찾아주시고 즐거워해주시는 고객들 덕분에 매일이 감사하고 즐겁다는 권대선 대표님께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처음 이곳을 차리며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반미(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도 함께 선보이고 싶었거든요. 진짜 베트남 카페처럼 다양하게 준비하고 싶었는데 바로 코로나가 터지면서 못하고 있네요. 손님들이 커피만 드시기에는 조금 허전하실 수 있기에 쿠키나 비스킷을 함께 내어드리고는 있지만,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서 베트남 디저트류도 함께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항상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계획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고요. 베트남 여행을 가셨던 분들이나 그렇지 않은 분들 모두가 즐기실 수 있는 카페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아담하지만 현지의 감성을 가득 담아내 잠시 해외에 있는 듯한 기분과 여유를 즐기기 좋은 <깜언>. 아직 해외여행이 안전하지 못한 이 시기가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천안역 지하도상가 속 베트남으로 색다른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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