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 좋은 인절미 맛집
공설방앗간

78번째 이야기 / 2022.01.10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부옇게 김이 서리는 쫄깃쫄깃한 떡들이 어우러져 군침을 꼴깍 삼키게 만드는 곳, 방앗간이다. 또 간편한 빵이나 과자 같은 먹거리가 늘어나면서 떡을 만들어 먹는 사람도, 떡을 즐기는 사람도 줄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곳 역시 방앗간이다.

이제는 거리를 가득 메우는 수증기 사이로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풍경을 쉽게 볼 수 없게 됐지만, 천안 역전시장에는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역전시장이 공설시장이었던 시절부터 57년째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공설방앗간>이다.

그 긴 세월을 <공설방앗간>과 함께한 조수형 할머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설방앗간

기름집에서 방앗간이 되기까지

1951년 전쟁 직후부터 천안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시장 기능을 담당하며 발전해 왔다는 ‘천안역 공설시장’은 2016년, 역전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때 황금시장이라 불릴 정도로 붐비던 곳이 지금은 혹한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전통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그곳을 공설시장으로 기억하며 부르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한창 시장이 형성되던 1960년대에 그곳에 자리를 잡은 <공설방앗간>은 처음부터 방앗간은 아니었고, 조수형 할머님도 처음부터 방앗간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고향은 아산인디 20대 초반에 결혼을 천안으로 오면서 그때부터 쭉 이곳에 살고 있어. 그때는 생활이 많이 힘들던 때였는디 첫아이를 낳으면서 장사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을 했고 리어카를 마련해 노점상을 했어. 채소, 과일, 사탕, 과자 등으로 점차 품목을 바꿔 팔면서 돈을 모았고 어물전을 차리게 됐지. 그렇게 몇 년 지났을까, 그때 조카가 천안에서 기름집을 하고 있었는디 갑작스레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우리가 인수하게 된겨.

그렇게 1~2년 기름집을 하다가 아무래도 기름만 짜서는 안될 것 같은겨. 그래서 방앗간에 필요한 기계들을 하나씩 들여놓고 떡도 만들고, 고추도 빻고 하면서 늘려나갔지. 그때는 여기가 공설시장이었으니께 당연히 이름도 공설기름집이었다가 공설방앗간으로 바꿨고.”

마음만은 남부럽지 않은 부자

그 시절 방앗간은 기계가 좋지 않을 때여서 기름을 완전히 짜내지 못한 깻묵(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상업용 기계를 갖춘 큰 공장에서 이 깻묵을 사 가는 일이 흔했는데 <공설방앗간>도 그중 하나였다. “그땐 손님들에게 깻묵만 받고 기름은 돈도 안 받고 드렸어. 그런데도 워낙 기름집이 흔하지 않을 때여서 엄청 바빴지. 가을에 깻묵만 팔아도 농사짓는 사람들보다 수입이 나을 정도였으니께. 그런디 쌀을 빻아주고 돈 받지, 고추 빻아주고 돈 받지, 물론 일을 하지만 어떤 직업이든 일 안 하겠어? 내 나름대로는 공짜 돈을 받는 느낌이더라니까? 생각해 보면 처음 조카에게 인수했던 기름집이 나에겐 큰 복이었어. 어물전을 하며 졌던 빚을 기름집 1년 만에 다 갚을 정도였거든. 큰돈은 못 벌어도 이거 하면 빚은 안 져. 마음만은 부자여, 부자.”

오래전 일들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미소 짓던 조수형 할머님은 방앗간을 시작하며 일이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일은 없어. 오히려 재밌지. 남을 속일 필요도 없고, 돈 욕심도 부릴 필요 없고, 월매나 좋아? 다른 장사는 남을 속여야 이윤을 낼 수 있잖여. 그런데 이건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도 없고, 그냥 내가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겨. 쌀 한 말 들 힘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어.”

예전에는 이른 새벽부터 나와 쌀을 빻고 떡을 쪄야 했지만, 코로나19와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지금은 주문이 없는 날은 오전 7시에 문을 연다. 역전시장 역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한산하기만 했는데도 할머님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관광을 못 다니니께 떡 주문도 잘 안 들어와. 예전에는 놀러 가는 사람들이 떡을 많이 맞춰서 새벽 5~6시까지 떡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거든. 그래서 요즘은 바쁜 것도 많이 없어. 하지만 이런 시기에 빚내서 장사하지 않는 게 어디여. 내 가게, 내 집이니께 눈떠서 일만 하면 돈이 들어오는 거잖여. 이렇게 내가 수고한 만큼 버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지, 돈 걱정은 안혀.”

공설방앗간
공설방앗간

인심이 넉넉한 인절미 맛집

<공설방앗간>은 천안에서 인절미가 가장 싸고 맛있는 집으로 통한다. 모두가 힘든 코로나 시국에도 이곳의 인절미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 집의 가장 자신 있고 인기 있는 메뉴는 인절미여. 양이 넉넉하고 맛있다는 소문도 많이 났고, 절대 남을 속이지 않는 신념 덕에 똑같은 양의 쌀을 써도 떡이 넉넉하게 나오니께. 대부분 손님들이 ‘떡 한 말 해주세요.’하면 많은 방앗간들이 떡 무게로 12kg을 맞춰줘. 하지만 우리는 쌀 무게를 달아서 그걸로 떡을 하고 그렇게 나온 떡을 전부 다 드려. 그러면 고물 같은 것이 추가로 더 들어가기 때문에 15~16kg, 많게는 17kg까지 나오고 그랴. 그러니 떡 양이 훨씬 많을 수밖에.” 소량으로 파는 인절미 역시 다른 곳보다 저렴한 2천 원이다. 고소한 콩고물이 듬뿍 묻어있는 쫄깃쫄깃한 인절미를 그 가격에 맛볼 수 있다니. 많은 사람들이 <공설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워낙 저렴해 남는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조수형 할머님과 대표님 내외는 인심도 후하다. 자주 찾는 단골들에게 서비스 떡도 넣어주시고, 그곳을 방문하는 우체부 및 택배 기사님들께도 떡을 나눠주신다. “항상 바쁘게 이곳저곳을 다니시느라 제대로 챙겨 드실 시간도 없는 분들이잖여. 이깟 떡 몇 푼이나 한다고. 오히려 우리가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분들이 맛있게 드셔주시면 우리는 그걸로 충분하제. 항상 고마운 분들이니께.” 욕심부리지 않고 양심껏 하는 것이 방앗간을 지켜온 신념이라는 말답게 그곳의 하루는 정직하고, 성실하고, 넉넉하다.

공설방앗간
공설방앗간

현재 방앗간은 조수형 할머님의 아들과 며느리인 손희철 대표님 내외가 운영하고 있다. 할머님과의 인터뷰 내내 가게 안 작업장에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쌀을 빻고 삶은 팥을 찧으며 묵묵히 떡을 만들던 분들이었다. 할머님의 신념을 이어 워낙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게 방앗간 일을 함께한 그들이었기에 할머님께서도 그곳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고. “한 20년 전쯤 아들과 며느리에게 방앗간 일을 넘겨줬어. 그때 손주들이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기숙사 생활이 힘들 것 같아서 내가 서울에 방을 얻어서 애들 뒷바라지도 하고 데리고 있었지. 그렇게 서울에서 지낸지 12년 조금 넘었나? 애들 대학 졸업시키고 취직하는 것까지 보고 다시 내려오는 동안 아들 내외가 방앗간을 도맡아서 운영했는디 아주 잘혀.” <공설방앗간>이 50년 넘게 똑같은 맛, 똑같은 인심으로 칭찬이 자자할 수 있었던 건 대표님 내외의 노력도 한몫했다.

지금은 손주들이 모두 장성하여 다시 천안으로 돌아온 조수형 할머님도 그 자리를 함께 지킨다. 그동안 방앗간을 통해 즐겁게 일하고 많은 복을 누려 더 이상의 바랄 것이 없다는 할머님은 방앗간 일을 부모님만큼이나 잘 해내는 손자에게 이곳을 물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 방앗간 덕에 우리 애들도 다 살 만큼 살고, 손주들도 다 키웠고. 나는 편안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방앗간 일을 꽤 잘하는 손자가 있는디 그 아이에게 이 방앗간을 물려주고 싶은 소원뿐이여. 3대가 한결같은 맛으로 많은 손님들에게 맛있고 푸짐한 떡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겠어.”

공설방앗간

이렇게 맛있는 떡을 만드는 일에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공설방앗간>은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오며 많은 고객들과 함께 했다. 우는 아이를 핑계로 슬그머니 깻자루를 훔치려던 사람, 애써 짜놓은 고객의 기름을 간장으로 슬쩍 바꿔가는 사람 등 별별 일이 다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고마운 단골이었다. 특히 오래전 엄마의 손을 잡고 왔던 아이가 자라 자신의 아이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을 때면 알 수 없는 뿌듯함과 뭉클함이 느껴진다고.

예전보다 떡을 찾는 이들은 줄었지만, 조수형 할머님과 손희철 대표님 내외의 올곧은 신념과 인자하고 따뜻한 마음씨 덕분에 <공설방앗간>은 여전히 든든한 한 끼를 채워줄 맛있는 떡이 가득한 곳, 단골들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랑방으로 인기 만점이다. 쌀쌀한 겨울, 출출함이 느껴진다면 오늘은 빵이나 과자 대신 천안 역전시장에서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쫄깃한 떡으로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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