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생겨먹어도
괜찮은 우리,
아무로키

74번째 이야기 / 2021.11.26

우리는 종종 남이 사는 모습을 보며 남과 다른 나를 자책하곤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SNS 속 사람들의 모습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저렇게 태어나지 못했을까’를 생각하며 우울해하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천안역 지하도상가에는 이런 생각들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로 존재의 가치를 전하는 특별한 소품샵이 있다. 지하상가 200, 201호에 위치한 <아무로키>다.

무언가 독특한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그곳에서 이현아 대표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아무로키

방처럼 편안한 공간

<아무로키> 소품샵의 첫인상은 깔끔하고 예쁘게 잘 꾸며진 누군가의 방 같았다. 지하상가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아기자기한 곳, 모두 27살의 대표님이 손수 꾸민 공간이다. “천안시에서 창업지원을 받아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지하상가 한 칸은 너무 좁고 답답할 것 같아서 무작정 두 칸을 임대했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넓어서 당황했어요. 지금이야 제품 종류가 많아져 괜찮지만, 당시엔 핸드폰 케이스 4가지, 그립톡 4가지가 전부였거든요. 그걸로 어떻게 채워야 하나 막막했죠. 그래서 제 방을 만들듯 마음대로 하나씩 꾸몄더니 이렇게 완성되었네요. 부족하고 어설픈 매장인데 찾아주시는 분들마다 예쁘다, 신선하다 칭찬을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아무로키>는 이제 막 오픈 4개월 차에 접어든 따끈따끈한 신규 매장이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다는 이현아 대표님의 원래 직업은 배우.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강원도립극단을 비롯해 극단소년 등 여러 곳에서 연극과 뮤지컬 공연을 했다. 캐릭터 소품과는 크게 관련이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소품샵을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제가 마지막에 몸담고 있던 ‘극단소년’은 제 나이 또래분들이 직접 극단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너무 대단해 보여서 어떻게 직접 극단을 차릴 생각을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우리가 원하는 무대를 우리가 직접 만들고 싶어서 내 무대는 내가 만들자는 모토로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 역시 내 무대를 내가 만들고 있다는 꿈을 가지며 배우 활동을 했었지만,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니 정작 저는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만들고 있었을 뿐 남에게 쓰이고 있단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자신의 무대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했다. “나만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배우 활동을 하면서 종종 개인 인스타그램에 웹툰 형태로 올렸던 콘텐츠들을 생각했어요. 그림을 따로 배워본 적은 없어서 하나를 그려도 엄청 오래 걸리지만, 그 시간만큼은 너무나도 즐거웠기에 그런 그림으로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천안에서 하는 지원사업을 알게 됐고, 이렇게 ‘아무로키’ 캐릭터와 저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매장을 얻게 됐어요. 저는 지금 제 무대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로키

스마트폰/이어폰 케이스, 그립톡, 키링, 엽서, 스티커, 유리잔 등 판매되는 상품들은 여느 소품샵과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이곳만의 특별한 요소를 담았다. 바로 이현아 대표님이 직접 만든 귀여운 캐릭터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본떠 만들었다는 메인 캐릭터는 다소 어색한 표정에 본인의 콤플렉스와도 같은 팔자주름을 넣고, 구불구불한 선으로 그려 ‘아무렇게나 생겨먹은’ 모습을 표현했는데, 그 모습이 은근히 웃기기도 하고 귀여워 미워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 이후로 한 개의 이빨과 뿔을 가진 도깨비, 통통한 고양이, 무표정한 강아지, 귀여운 애벌레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더해져 지금에 이르렀다.

"아무렇게나 생겨먹어도 괜찮아"


이현아 대표님은 ‘아무로키’에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아무렇게나 생겨먹은 존재, 그리고 아무에게나 주어진 행운(럭키).

“사실 예전부터 저 스스로가 아무렇게나 생겨먹었다는 생각을 쭉 했었어요. 직업이 배우인데 언제 스타가 될 수 있을지도 막막하고 성격은 내성적이라 팬들이 생겨도 소통도 잘 못하고.... 자꾸만 잘나가는 또래의 남들과 비교하면서 점점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죠.”

“그러다 문득 ‘왜? 아무렇게나 생겨먹으면 안 돼?’ 하는 반항적인 마음도 생기고, ‘이렇게 생긴 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 같은데?’ 하는 확신도 들고, 아무렇게나 생겨먹을 수 있는 것마저도 우리가 태어났기에 누릴 수 있는 기회이자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아무로키’가 됐어요. 이 사업의 모토이자 슬로건도 ‘아무렇게나 생겨먹은 우리들의 자립적인 가치를 응원하는 캐릭터 사업’으로 정했죠.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 마음이 가는 곳으로,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보자. 그게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도 그 삶이 꽤 괜찮을 것이라는 의미에서요.”

아무로키

갑작스러운 결정과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은 많은 시행착오를 불러오기도 했다. 결과물을 바로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품들이다 보니 공장에서 잘못 생산된 제품도 많았고, 상품이 완전히 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문이 들어오거나 포장지가 없는데 배송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매장에 손님이 왔지만 카드 단말기가 없을 때도 있었다. 완벽하지 않게 시작하는 것이 겁도 나고 힘들었지만 어차피 준비가 안 된 것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는 이현아 대표님은 이런 어설프고 부족한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좋아해 주시는 고객들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아무로키
아무로키

이런 고객들을 위해 잠시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편한 공간도 마련했다. “아직 아무도 이용하신 분은 없지만, 이곳에서 잠시 쉬고 가실 수 있도록 소파도 두고 집처럼 아늑하게 꾸미려 애썼어요. 분위기 좋은 재즈 음악과 멋진 조명도 준비했고요. 맥주도 구비되어 있답니다. 이곳이 많이 알려져서 쉬어가시는 분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

완벽하지 않은 아무로키의 캐릭터들처럼 우리 역시 완벽할 수 없고, 실수투성이에 부족해 보여도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빛나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이현아 대표님은 서울과 용인에 새로운 입점처를 마련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절친인 유명 사진작가와의 협업으로 분야를 넓히고, 동료 배우들의 응원과 지지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상가에서 함께 일하는 <퍼플스토리> 대표님께 제품 제작에 대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천안 지하도상가에 더욱 정감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곳에 가게를 차리기 전까진 저도 지하상가에 잘 오지 않았어요. 왠지 모르게 지저분할 것 같다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입주하려고 와보니 너무 깨끗하고 깔끔하더라고요.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매장도 많고,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고요. 이런 것들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 아쉬워요.

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른 훌륭하신 대표님들과 친분을 쌓게 된 것도 저에겐 크나큰 행운이지만, 이런 좋은 매장들이 많다는 것도 적극적으로 홍보가 된다면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아무로키

현재 <아무로키>는 소품샵 형태로 상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아무로키의 의미나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콘텐츠 개발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굿즈 제작에 대한 수업이나 클래스 의뢰도 많이 들어온다며, 아무로키의 의미를 예술교육 분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큰 꿈도 밝혔다. “지금 제가 판매하고 있는 이 상품들은 곁에 두었을 때 그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역할만 하면 충분할 것 같아요. 구체적인 방법은 계속 고민해야겠지만, 언젠가는 이 아무로키의 의미를 예술교육 쪽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입니다. 아직은 어설프고 빈틈도 많지만, 매번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매장이 많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하세요. 그 말씀처럼 저도 계속해서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많이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막 시작하는 첫걸음을 뗐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당당하게 나아가는 그녀에게 천안 원도심이 멋진 무대가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아무로키의 이야기는 인스타그램(@amuroki_hi/)에서 끊임없이 계속될 예정이며, 귀엽고 다양한 상품들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amuroki)와 서울 대학로의 ‘세상마켓’, 용인 ‘연다굿즈’에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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