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요.
글로리아 혼수

67번째 이야기 / 2021.06.07

최근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해외 유명 영어사전에 ‘한복(hanbok)’이 ‘한국의 전통의상’으로 등재되었다는 것. 뛰어난 가치를 지닌 우리의 전통이 점점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중국은 한복과 김치가 자신들의 것을 베낀 것이라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어 더욱 속상한 요즘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천안역전시장에서 또 한 번 반가운 일이 있었다. 2대에 걸쳐 우리나라 혼수 용품과 한복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글로리아 혼수’ 박혜란 대표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글로리아혼수

헤어 나오기 힘든 한복의 매력

박혜란 대표님을 찾은 것은 퇴근 무렵의 저녁 시간.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되어가는 시간이었음에도 그녀를 찾는 손길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쉴 새 없이 바쁜 그녀와 인터뷰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매장이 마감 준비를 하는 틈을 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이 처음에는 이불가게로 시작하셨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혼수로 이불을 장만하면서 한복도 같이 사고 그랬거든요. 엄마를 좋아하신 고객들이 한복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하도 요청을 많이 하셔서 결국 한복도 취급하게 됐죠. 그렇게 수십 년이 흘러 여기까지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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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혜란 대표님은 화가의 꿈을 키우며 그림을 전공했지만,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한복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26살 때인가? 부모님 일을 돕기 위해 처음 가게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크게 관심은 없었는데, 하다 보니 한복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 전공과 아예 무관한 것도 아닌 듯했고요. 그 당시 워낙 부모님이 잘 일궈놓으신 가게이기도 했고, 요즘처럼 홈쇼핑이나 인터넷이 잘 발달된 때도 아니었기에 손님이 굉장히 많았어요.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맨발로 뛰어다녀도 부족할 지경이었죠.”

추억을 회상하며 아련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부모님과 같이 해오다 온전히 제가 물려받은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저도 어느덧 이 일을 20년이나 해오고 있네요. 와.... 20년이라니, 너무 바빠서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참 어마어마한 세월을 보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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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트렌드

그동안 힘든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힘들다기보다는 시대가 빠르게 변하며 혼수를 생략하는 일도 많아지고, 한복을 찾는 분들도 많이 적어졌잖아요. 예전만큼 손님이 많지 않아서 가게를 반으로 줄였어요. 사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며 달려왔기에 지치기도 했고, 저도 나이가 들기도 했고요. 더구나 약 10년 전쯤 부모님께서 귀농을 하시면서 예전만큼 가게에 신경을 못 쓰게 된 것 같아요.”

단골손님 중 상당수는 중국인이었다. 이불과 한복이 예쁘기로 입소문이 자자해 한국에 올 때마다 대량으로 구매해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관광객이 사라지며 손님이 현저히 줄었고, 그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던 혼수용품마저 결혼식이 뜸해지며 줄어들었다. 결혼식, 명절, 환갑연 등 집안의 큰 행사나 각종 예식에서 빠지지 않던 한복이지만, 이제는 격식을 차리는 곳에서도 불편한 한복보다는 깔끔하고 편안한 평상복을 입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금은 무속인 분들이나 국악·전통무용 또는 종교 행사용 한복을 찾는 분들이 주로 오신다고. 그나마도 코로나로 인해 행사나 예식이 많이 줄어 다시 회복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단순한 옷이 아니라 작품을 만든다 생각해요”


상담부터, 재단, 제작까지 모두 대표님 혼자서 직접 담당하기에 많은 양의 주문을 받을 수 없고, 그렇기에 따로 홍보 없이 오로지 입소문으로만 손님들을 받고 있다는 글로리아 혼수. 그럼에도 끊임없이 고객들이 찾는 데에는 솜씨 좋은 대표님의 깐깐한 철칙이 있기 때문이다.

“저희 가게 주력 상품은 아무래도 한복인데요. 제가 직접 상담부터 제작까지 모두 해야 하기에 주문을 많이 받으면 벅찰 수밖에 없어요. 대신 한 벌을 만들어도 꼼꼼하게 하려고 해요. 손님의 체형이나 특이사항 같은 것을 반영해 맞춰드리죠.

그리고 제가 만든 옷은 끝까지 책임집니다. 제가 옷을 파는데 그 옷이 예쁘지 않거나, 그 옷을 입는 분이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으면 서로 기분이 안 좋잖아요. 아무래도 맞춤옷이라는 것이 만들다 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나올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다시 제작해서 드려요. 컬러부터 디자인 자체를 다시 싹 바꿔서 제작해드리기도 하고요.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만족스러운 옷을 사 가신 고객들이 ‘덕분에 내가 그날 제일 예쁘고 돋보였어’, ‘사람들이 나 오늘 너무 예뻤대’하시며 좋아하시면 그때만큼 기쁠 때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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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도 그런 분들이다. “한 번은 어떤 어머님이 오셔서 저에게 뜬금없이 그러시는 거예요. 저는 아직 젊은데, 저보고 오래 살라고요. 그분께 해드렸던 한복을 보고 친구분들이 자녀 결혼식 때 전부 저희 집에 오셔서 한복을 맞추시겠다고 하셨대요. (웃음) 그래서 전 더 오래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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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고객들의 사랑방

글로리아 혼수는 접근성이 좋은 천안역전시장 안에 위치하는 것은 물론, 오랫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왔기에 이웃과 고객들이 격의 없이 찾아와 차도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됐다. 지저분한 매장을 직접 청소해 주시는 분, 한복을 만드느라 아픈 허리를 밟아주시는 분 등 가족만큼이나 친한 분들도 많다.

돈을 많이 벌기보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며 가게를 찾아주시는 분들과 오래오래 소통하고 예쁜 전통한복을 알리는 데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박혜란 대표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아무래도 한복을 하는 곳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텐데요. 저도 앞으로 어떤 한복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있어요. 제가 한복을 정말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통한복은 요즘 나오는 개량 한복이나 생활 한복보다 불편할 수밖에 없거든요. 사실 시대에 맞춰 한복도 변화되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그만큼 더 많이 벌 수 있지만, 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변형되는 것은 싫거든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옛날식은 잘 모르니까 제가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저희 가게에서는 트렌드에 맞춘 한복은 팔지 않고 있어요.

가끔 그런 한복을 찾는 분들도 계시기는 해요. 예를 들어 황진이 스타일의 한복이 정말 예쁘기는 하잖아요. 그걸 결혼하는 신부 옷으로 만들어달라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황진이 옷 스타일이라는 게 예전 기녀들이 입던 옷인데, 그걸 알면서 신부에게 입히기는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그 한복은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면 어떤 손님은 이해를 못 하시고 나가시죠. 이렇게 계속 전통만 고수하고 제 나름대로의 작품만 만들다가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거 아닐지 고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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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부모님이 오래도록 해오신 일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뿌듯하다는 대표님은 잊지 않고 가게에 찾아오셔서 따뜻하게 안부를 물어주시고 이야기를 나눠주시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고, 그런 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끝으로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서 다양한 홍보와 지원도 좋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카드결제·간편결제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어떨지 의견을 주셨다.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연세가 있다 보니 다양한 결제 시스템을 많이 어려워하시고, 가끔 그런 분들을 위해 직접 가서 결제를 도와드리거나 은행을 대신 다녀오기도 한다는 그녀. 그런 따뜻한 마음씨가 있기에 오늘도 글로리아 혼수의 불빛은 늦게까지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꼭 이불이나 한복을 맞추려는 것이 아니더라도, 불쑥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고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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