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 마음도
편해지는 곳,
뿌리 / 메고가방

64번째 이야기 / 2021.06.03

천안역 지하상가를 걷다 보면 유독 환하고 널찍한 매장에 빽빽하게 많은 신발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곳이 눈에 띈다.

‘뿌리’라는, 강렬하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 이름을 가진 신발 전문점. 처음 보는 사람은 이름이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1994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지하상가의 불을 밝혀온 만큼 천안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그곳에서 오늘의 주인공 박장규 대표님을 만났다.

뿌리

오랜 역사를 간직한 신발의 뿌리

신발 가게 이름이 왜 뿌리일까?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쉽게 기억되기 때문. “젊은 시절, 어머니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신발 가게를 시작했어요. 그때 가게 이름을 뭘로 지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뿌리’라는 이름을 제안했죠. 듣자마자 ‘그거다!’ 싶었어요. 듣기도 좋고,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쉬운 이름이잖아요.” 그렇게 첫 가게에 뿌리 간판이 걸리게 됐다.

처음부터 천안에 둥지를 튼 것은 아니었다. 부천에서 1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하다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천안 지하상가에 임대를 받으면서 부천 매장은 친척 동생에게 넘겼다. 똑같은 이름으로 두 번째 매장을 내며 ‘뿌리’는 지금까지 38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자, 2호점이 있는 신발 전문점이 됐다.

뿌리

인터뷰 내내 매장 안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신발들에 자꾸만 눈이 간다. 뭐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찾지 싶은데, 신기하게도 손님이 원하는 디자인과 크기를 정확하게 찾아 권한다. 우리 눈에는 그냥 무심히 진열되어 있는 신발들로 보여도,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신발과 함께 해온 대표님만의 규칙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문득 박창규 대표님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신발이란 무엇일지 궁금해 물었다.

“좋은 신발의 기준은 ‘자신의 발에 꼭 맞는 편한 신발’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제가 처음 신발을 만지기 시작한 40여 년 전만 해도 신발을 만드는 기술이 좋지 않아서 쉽게 헤지거나 비 한 번만 맞으면 신발 밑창이 떨어지는 일도 많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정말 잘 만들잖아요. 한국에서 만드는 것은 물론, 중국 제품도 가죽 제품이 많고, 퀄리티도 뛰어나요. 요즘 헤지고 떨어져서 못 신는 신발 없잖아요. 내가 지겨워서 안 신거나, 오래 보관만 해두다 내피가 삭아서 못 신는 경우가 더 많죠.”

직접 신어보고 선택하세요!

대표님은 거듭 강조했다. “되도록 신발은 직접 신어보고 내 발에 편하게 맞는 것을 골라야 합니다. 발은 신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편한 신발을 신어야 몸의 균형도 잡아 주고, 쉽게 피로해지지도 않아요. 불편한 신발을 신으면, 아프고, 불편하고, 하루 종일 발에만 온 신경이 쓰이는 데다 심하면 질환까지 생기잖아요.

하지만 사람의 발은 전부 다르게 생겼어요. 다른 사람의 발에 편하다고 하는 신발이 내 발에는 안 맞을 수도 있거든요. 특히 기성화는 사람들의 발을 평균화하여 제작하기 때문에 신어보지 않고는 맞는지 알 수가 없죠.”

뿌리

온라인 쇼핑이 주를 이루고 있는 시대에 박창규 대표님이 오프라인 매장을 고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고객들의 발을 위해 매장에 구두 한 켤레, 운동화 한 켤레를 들일 때에도 공을 들여 꼼꼼하게 선별한다. 오랜 기간 매장을 운영하며 쌓아온 안목과 노하우로 좋은 소재를 사용하면서 발이 가장 편할 만한 제품을 골라낸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인터넷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사실 이런 가두매장은 이제 승산이 없어 보여요. 하지만 아직은 직접 신어보고 구매하는 고객들을 위해 인터넷 판매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솔직히 매장에서도 인터넷으로 사는 가격하고 크게 차이 나지 않고요. 같은 가격이면 사진만 보고 구매해서 반품/교환하는 것보다 직접 신어보며 예쁘고 편한 신발을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 신발만큼은 산책할 겸 매장에 방문하셔서 꼭 직접 신어보고 구매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뿌리

반가운 인연, 그리운 인연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해오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학생일 때 찾아오던 손님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아이와 함께 방문하는 경우도 있고, 부천 뿌리 매장에 오던 고객을 우연히 천안 뿌리 매장에서 마주치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땐 ‘뿌리’ 상호를 오래도록 기억해 주는 고객이 한없이 감사하다.

그리운 인연도 있다. 15년 전쯤 매장에 찾아오기 시작하셨다는 한 손님은, 70세가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올 때마다 항상 여러 켤레의 하이힐을 한 번씩 신어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4~5켤레를 바로 사가시는 멋쟁이셨다고. 그렇게 5년 가까이 항상 찾아오시던 분이 어느 순간 오시지 않아 가끔 생각이 나고 그립다고 전했다.

뿌리

서로 도우며 함께 발전해야죠.

처음 천안에 자리를 잡을 당시만 해도 곧 근처에 백화점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에 작은 기대가 있었다. 그 소식에 지하상가도 다양한 매장들로 북적였었다. 하지만 27년이 지나도록 진행이 되지 않자 매장은 하나 둘 비어갔고, 자꾸만 어두워지는 상가의 불을 조금이라도 밝히기 위해 그는 바로 앞쪽 매장 하나를 더 임대했다. 매장이 어두울수록 사람들이 더 찾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가방 전문점 ‘메고 가방’을 시작했다.

뿌리

수제 가죽 가방을 주로 취급하는 ‘메고 가방’ 이름 역시 가방을 메고 가라는 쉽고 직관적인 의미로 박창규 대표님이 지었다고. 매장이 두 개로 늘어나면서 지금은 아내분과 함께 마주 보며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침체된 지하 상권에 어떻게 하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한다.

천안 원도심 상권 활성화를 위해 시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와 더불어 지하상가 홍보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탰다. 예전부터 천안에 살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곳에 지하상가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주변 상가들도 서로 돕고 함께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뿌리

뿌리를 견고히 내린 나무는 아무리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넘어지거나 뽑히지 않고 굳건하다고 했던가. 천안역 지하상가에서 27년의 시간을 묵묵히 버텨온 신발 전문점 ‘뿌리’ 역시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며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손님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내 발에 편하게 맞는 신발 한 켤레가 필요한 때라면, '뿌리'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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