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명동
구제 옷가게의 원조
강남명품구제

47번째 이야기 / 2021.05.22

화창한 초여름 날씨가 지속되면서 강남명품구제의 옷들이 오랜만에 가게입구 데크에 진열되었다. 갑갑한 실내를 벗어나 구제옷 가게도 벌써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동수 대표님은 마침 물건이 들어오는 날이라 판촉 POP를 만드는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작년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올해는 매출이 반 정도는 살아나서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다시금 기운을 내고 있다고 하셨다.

명동의 전성기에는 보세 옷도 너무 잘 팔렸어요

강남명품구제는 2012년에 지금 자리에 개업을 했다. 최동수 대표님은 개업한 날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첫날부터 손님이 어찌나 많았던지 정신없이 계산을 하고 옷을 건네 주었다. 영업이 끝난 후 마감을 하기 위해 계산대를 열었더니 돈이 넘쳐서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질 정도였다고 한다. 담아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검정 봉지에 담아 집으로 가져와 밤새 세어보았다. 첫날 수입이 약 500만원 정도. 매일 이렇게만 팔면 소원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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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상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는지 판매 물건을 정리하느라 힘든 와중에도 최동수 대표님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명동에 보세옷집이 몇 개 없었다. 강남명품구제처럼 대형 매장으로 하는 집도 없었고, 서울서 직접 물건을 해오는 집도 없었다. 커다란 창고에는 물건이 계속 들어왔고 직원을 두 명이나 두고 일했지만 주말이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옷이 잘 팔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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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전업주부로 살다가 보세옷집 사장으로

흔히 남자이름으로 생각하기 쉬운 ‘동수’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셨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당시에는 아들을 낳기 위해 딸에게도 남자이름을 지어주는 집이 많았다. 대표님은 결혼 후 명동에 들어오면서 쭉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당시 남편분이 하시던 명동문화사도 번창했기에 오후에는 종종 사무실을 보곤 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경영이 힘들어지며, 최동수 대표님도 보세옷가게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최동수 대표님의 구제가게가 잘 되면서 요즘은 오히려 남편분이 가게 일을 도와준다. 무거운 짐 옮길 때나 짐 정리 등 힘이 드는 일은 남편분의 몫이다.

지금은 코로나상황이라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매출이 줄었다. 10년 사이 보세옷집이 많이 생긴 영향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동수 대표님은 보세 옷 가게 운영한 덕분에 자녀들을 대학에도 보내고 결혼까지 무사히 마치게 되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한다. 지금은 직원 없이 혼자 쉬엄쉬엄하고 있지만 이대로도 편안하고 나쁘지는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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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꽃 수 놓은 원피스도 있어요

바느질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최동수 대표님은 틈틈이 원피스에 수를 놓는다. 밋밋하던 원피스에 꽃수를 놓은 것이 포인트가 되어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단골 중에는 대표님이 수놓은 옷만 찾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최동수 대표님은 마네킹을 여름차림으로 디스플레이해 놓았다. 여름 내내 잘 입을 것 같은 편안하고 예쁜 옷들은 천연소재라서 시원하고 촉감도 좋았다. 가격은 2만원선. 단골들이 자주 찾는 인견 원피스는 보세가 아닌 새 제품으로도 가져와 팔고 있다. 인견 제품은 보통 10만원 이상이다.

강남명품구제 강남명품구제

강남구제의 고객들은 중장년들이 많다. 주말에는 외국인 손님이 많은데 외국인들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다. 그래서 값싸고 실용적인 옷들은 매장 앞쪽에 내놓고 젊은 주부들이나 직장인들을 입을만한 천연소재의 예쁜 옷들은 안쪽에 걸어두고 있다. 대표님은 잘 찾아보면 새 옷도 있다며 몇몇 가지를 보여주셨다. 보물찾기 하듯 골라내는 것이 보세 가게의 묘미가 아닐까?

강남명품구제

가방은 지갑부터, 여행용 가방까지 골고루 준비되어있다. 명품도 많이 있다. 물건이 많다보니 취향에 맞는 제품이 없을 수가 없다. 명동 중앙로에 간판도 잘 보이는 <강남명품구제>. 부지런히 찾다보면 뜻밖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천안명동의 원조구제가게에 들러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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