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사진관
두 번째 이야기,
자화상 프로젝트

22번째 이야기 / 2021.04.13

인적이 드문 거리를 지나 들어갔던 달팽이 사진관. 이곳은 오래된 사진관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이었다. 달팽이 사진관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곳은 단지 아날로그 감성을 담아 사진을 찍는 곳이 아닌, 시간의 흔적을 톺아보며 그 속에 있는 진정성을 돌아볼 수 있는 저장소 같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달팽이 사진관은 아직 필름, 그것도 흑백 필름으로 주로 작업하며 사진관을 찾아주는 손님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 취미에 가까웠던 흑백 사진관에서 이제는 누군가의 인생의 기록을 남겨주고 또는 과거의 잃어버렸던 장면을 다시 새롭게 남겨주기도 하고, 장롱 속 오래 시간 잠들어있던 필름 카메라 안에 담긴 추억을 복원하기도 한다.

그중 오랜 기간 동안 손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며, 구경하는 내내 사진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을 정도의 매력이 느껴지는 달팽이 사진관의 자화상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달팽이사진관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가운데, 마음이 찡한 촬영 에피소드라며 한 모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모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때와 같은 사진을 다시 한번 재현해 촬영하고 싶다는 의뢰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찍었던 사진 또한 사진관에서 찍은 흑백사진이었다. 모녀는 같은 느낌을 담고 싶다며 사진과 같은 포즈를 준비하고 흑백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수소문 끝에 찾아왔다.

어렸을 때는 엄마보다 키가 작았지만, 지금은 본인이 더 커진 모습과 팔순을 훌쩍 넘긴 엄마의 지금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딸이 소망이 있었고, 결국 의뢰인의 의도 대로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일부러 찾아와 필름으로 재촬영을 고집하는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흑백사진이 주는 여운과 매력으로 이어져 한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흑백사진에 대한 수요는 분명 있지만 공급이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어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대표님.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젊은 친구들은 잘 찾아 오지만, 정작 흑백 사진의 여운을 진득하게 느낄 수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은 몰라서 못 찾아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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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사진관의 자화상 프로젝트는 최근 들어 웨딩 사진이나 키즈 사진관에서 화려한 조명과 디지털화된 작업되는 환경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남겨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화상 프로젝트는 포토샵으로 만들어진 이쁜 얼굴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보여주자라는 주제로 자화상을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회까지 열게 되었다. 주제 안에는 내가 나를 사랑 못하는데 남들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내 얼굴에 뾰루지 하나 있어도 자신이 없어지는데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마친 후 대표님은 '시간이 지나면 나쁘지 않더라! 당장은 싫을지언정 지나고 나면 이게 나인데'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 같이 겪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참여한 고객에겐 조금 고통스러운(?) 프로젝트였는데, 촬영 후 결과물을 거의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흑백필름으로 촬영하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두가 촬영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인화에 들어갈 수 있었단다. 그래서 프로젝트 초기에 촬영한 고객은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전시회를 진행하기까지 약 1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고. 전시회를 와서야 올 수 있었던 결과물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호기심이 생기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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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고마워요 4번째 이야기 자화상

전시회를 와서 본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머 어떡해"로 시작해 한번 쭈욱 보고선 “나쁘지 않네“로 주로 끝났다고 한다. 내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서일까? 프로젝트에 참여한 많은 고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단다. 1년 전의 내가 1년 후에 나에게 보낸 선물이라는 의미로 작품을 구매하는 분들도 제법 많았다고 덧붙였다.

1년 동안 변한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자 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 되는 프로젝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팽이 사진관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화상 사진들에 특이한 포인트를 하나 더하자면, 셔터를 바로 사진 속 본인이 누른다는 점이다.

이를 드러내고자 셔터를 찍는 주인공의 손을 프레임 안에 넣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정말 모든 사진 속에서 셔터를 든 손이 눈에 띈다.

이 의도에 대해 대표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과연 자신이 '진짜' 웃는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실제로는 거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는 나의 웃는 모습은 '웃는 모습'을 인식하고 보는 거니까요. 그래서 자화상 프로젝트의 자화상은 감정의 최정점, 정말 행복하게 웃는 순간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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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감정의 최정점을 담아낼 수 있을까? 결국 감정의 끝은 본인만이 아는 감정이기에 셔터를 모델에게 직접 쥐어주게 됐다고 한다.

"사진가가 모델과 아주 친밀한 교류가 있지 않는 이상, 그 감정의 '최정점'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델에게 셔터를 맡겼어요. 그리고 대화를 주고 받으며, 행복한 기분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국, 자화상 프로젝트는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가 작가이면서 모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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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스트리트 포토를 촬영하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일반인 인물 사진전을 여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대부분 카메라를 들이대면 거부반응이 크고, 초상권이 무척 엄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전문 모델이 모델이된 사진전은 익숙하지만 일반인이 모델로 한 사진전은 익숙하지 않은 점 또한 '일반인 인물 사진전'이 쉽게 나올 수 없는 이유라고 한다.

자연스러운 표정의 일반인을 사진 속에 담기란 쉽지 않다. 이는 다시 말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찍는 사진은 사진을 찍는 것 뿐만 아니라 많은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화상 프로젝트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인물 사진전의 문턱을 낮추자 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언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지, 또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다방면에서 고민 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새로운 전시회 일정은 잠시 중단된 상태다.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은 2021년에 새로운 작업과 또 하나의 자화상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나의 모습을 기록하는 의미의 '자화상 프로젝트'지만, 더 다채로운 방식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한다. 달팽이 사진관에서는 '자화상 프로젝트'에 참여할 모델이자 작가를 구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직접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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