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편하게
책을 마주할 수 있는
독립서점
일상서재

85번째 이야기 / 2022.03.02

점점 책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책쓰기가 오직 글솜씨 좋은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책을 쓰고 직접 출판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책들 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인생의 문장을 찾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신인작가나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소규모의 독립서점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온갖 책들을 한데 모아놓은 대형서점보다 특색 있는 독립서점을 찾는 발걸음이 늘고 있다. 천안에만 해도 여러 개의 독립서점이 있는데 작년 말, 천안 원도심의 복합문화공간 <천안볼트>에도 특별한 책방 <일상서재>가 문을 열었다.

일상서재

사람과 문화를 잇고, 책으로 소통하는 곳

천안 청년거리에 볼트가게가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2020년 처음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천안볼트>는 특별한 간판 하나 없이도 이미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을 정도로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그리고 그 시작엔 ‘일상수집가’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는 캘리그래퍼 이의용 대표님이 있다.

천안와락을 통해 이미 소개되기도 했던 그가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일상서재>를 통해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는 책방지기로 나선 것.

사실 그가 서점을 운영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허송세월>이라는 책방의 2대 대표로 있었어요. 그러다 그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 <허송세월>은 4번째 대표님이 또 다른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2년 정도 서점 운영을 쉬면서 제 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는데요. 캘리그래피 작업과 1인 출판사 운영, 책 만들기 수업 등, 제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활동이 책과 관련된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면서 자체적으로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강의도 하고, 캘리도 책과 관련된 것으로 집중하면서 분야를 더 좁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상서재>를 시작하게 됐어요. 저에게 있어서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책과 관련된 것은 다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일상서재

그렇게 탄생한 <일상서재>는 아기자기하면서도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은은한 조명 아래 널찍널찍하게 배치된 책과 가구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어준다. 항상 자신을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이의용 대표님은 이곳을 자신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저는 남들이 어설프다, 어색하다 하는 것들을 오히려 더 선호해요. 저 역시 캘리그래피 작업을 10년 넘게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오히려 서툰 글씨 쓰는 것을 더 좋아하죠. <일상서재> 역시 완벽하지 않아도 책이나 굿즈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이고요.

사실 ‘일상서재’라는 이름도 그렇게 짓게 됐어요. 제가 ‘일상’을 소재로 한 그림일기를 주로 그리는 이유도 있지만, 유명 작가들만큼 잘 쓰지는 못해도 ‘일상’에 가까운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고 그런 책들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니까요. 말하자면 서툴러도 괜찮은 공간이죠. 그렇기에 누구나 이곳을 편하게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아가 누구나 자연스럽게 문화를 접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일상서재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일상서재>의 문을 열고 처음 이의용 대표님을 만나게 되면 한 번쯤 듣게 되는 말이다. 얼떨결에 이름을 말하고 왜일까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정성스럽고 예쁜 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는 특별한 선물이 돌아온다. 책을 구매한 고객에게는 원하는 문구를 담은 세상 단 하나뿐인 책갈피도 제공한다. 캘리그래퍼로 오랜 시간 활동해온 대표님의 마음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소중한 선물이다. “사실 제가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캘리를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선물을 드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여기는 작은 책방이어서 책값을 할인해 드리는 것이 어렵잖아요. 그 대신 제 마음을 담아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조금 더 기억에 남는 선물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비록 큰 선물은 아닐 수 있지만, 앞으로 책을 제 메인 직업으로 삼고 캘리는 그저 취미처럼 선물로 드리는 것이 제 목표 중 하나입니다.”

간판도 제대로 없는 이곳을 찾아와주시는 고객들이 항상 감사해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또한 고객들과 소통하고 정을 나누고자 하는 노력도 서점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일상서재>는 책을 보며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셀프 음료바를 마련해두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좋아하는 책이나 추천하고 싶은 책을 편하게 남길 수 있는 북로그(Book Log) 노트와 릴레이로 책의 문장을 필사하는 노트도 있다. 대형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공간이다.

일상서재
일상서재

또한 대형 서점에 비해 작고 책의 가짓수도 적지만, 책방지기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책들 속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나에게 감동을 주는 책을 찾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대표님께 소개를 부탁했다. “지극히 저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책들이 많아요. 안쪽의 독립출판물 코너엔 출판사 없이 나오는 책들을 취급 및 판매하고 있고요. 일반 서적의 경우 그림이 많이 들어간 에세이나 만화, 그림을 이용해 기록을 남기는 정보가 담긴 책들이 많죠. 그리고 집이나 공간에 대한 책이나 긍정적이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책들도 있어요. 또한 동화책도 많은 편인데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도 읽을 수 있는 동화를 주로 선별해요. 덕분에 어린 자녀와 함께 오시는 가족도 많죠.”

오래된 책들이나 절판된 책도 있고, 오직 <일상서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들도 있다. “제가 마음에 들었던 책인데 절판이 된 것들은 중고로 구해와서 판매하곤 해요. 되도록 추천해 드릴 수 있는 책들 위주로 구성하고 있는데 아예 판매를 하지 않는 책도 있어요. 제가 <허송세월>을 운영하며 판매했던 독립출판물 중 이제 샘플만 남아있는 것들은 더 이상 구할 수 없으니 이곳에서 읽어보실 수 있도록 비매품으로 전시만 해두고 있죠.

1인 출판사를 겸하고 있기에 저의 수업을 들으시는 수강생분들이 직접 만드신 책들도 많아요. 아들이 자라면 선물해주고 싶어서 아들과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신 어머니도 계시고, 생태계에 관심이 많아 천안 내 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산속 생물들을 직접 글과 그림으로 담아내신 할머님, 은퇴 후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책으로 담으신 아버지, 각자의 단편소설을 소설집으로 엮은 4명의 고등학생들, 일흔이 넘으셔서 평생 취미로 지어오신 시를 모아 시집을 내신 할머님 등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색다른 책들이 많고, 틀에 박히지 않은 내용들로 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작품들이 많아서 저도 그분들의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그의 설명에서 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 느껴진다.

일상서재

‘망고’로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곳

어느 순간부터 <천안볼트>의 마스코트이자 간판스타가 된 10살 푸들 ‘망고’의 인기는 여전하다. 낯가림 없이 누구에게나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안기고, 애교를 시전하는 덕에 <일상서재>를 처음 찾은 고객들도 금세 마음을 열어 단골이 되고 ‘망고’의 열혈 팬이 된다. 책이 아닌 ‘망고’를 보기 위해 애견간식을 사들고 오는 손님부터 직접 ‘망고 굿즈’를 만들어 오는 손님까지 다양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서점 한편에는 엽서, 손뜨개 수세미, 마우스패드, 펜던트, 크리스마스카드 등 여러 굿즈들이 즐비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의용 대표님이 자랑스럽게 말을 꺼냈다.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곳 자체가 일반인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책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점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망고’가 큰 역할을 하고 있죠.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고 편안함과 즐거움도 선사하니까요.

책이라는 것이 꼭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적이기만 한 것도 아닌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전 제가 운영하는 서점에서는 책에 대한 기준을 낮추고, 누구나 쉽고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년에 책에서 영감을 얻은 ‘귤까기 대회’를 열기도 했고요. 반응이 정말 좋아서 매달 열고 싶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심해지는 바람에 더 이어지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워요.”

코로나가 다시 잠잠해지면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할 계획이라는 그는 우선 복합문화공간에 자리한 책방의 특성을 살려 책 외에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접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책방에서 만나는 작은 전시회라고나 할까.

일상서재
일상서재

책방 속 또 다른 매력

우선 창문이 따로 없는 서점의 한쪽 벽을 이용해 창 없는 아쉬움 대신 마음속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전시'를 기획했다. 매달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공간에 신선함을 더하고, 이곳을 찾은 고객들이 다양한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천안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나 굿즈를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재활용 종이를 이용한 수제종이, 한정 수량 수작업으로 만들어 더욱 의미 있는 유리잔,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든 패브릭 소품,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좋은 도자기 공예품, 귀여운 캐릭터로 제작된 스티커와 키링 등 종류도 다양하다.

최종 목표는 책을 쓰는 작가로 평생을 활동하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방이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이의용 대표님은 믿는다. 10년 가까이 혼자서만 활동하다가 남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는 그는 사람과의 소통과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평생 책과 함께하기 위한 기반이 될 <일상서재>가 지금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공간이다.

일상서재

그저 책을 좋아하고, 책 속의 문장과 그 안에 담긴 글쓴이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들이 많아지면서 수많은 독립서점들이 곳곳에 문을 열고 있지만, 열악하기 만한 요즘 환경에서 꾸준히 운영을 이어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의용 대표님은 느리더라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책방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망고'와 함께 서점의 문을 활짝 열어둔다. 

다 볼 수도 없는 책들로 가득한 대형서점에서 만나는 뻔한 책들에 지쳤다면, 아담하고 정감 가는 작은 책방 <일상서재>에서 나에게 딱 맞는 책 한 권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열려있는 책 짓는 독립서점 <일상서재>의 다양한 소식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dailybooooks)을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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