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파상을 그리며,
유명전자

53번째 이야기 / 2021.05.26

과거 집안에 있는 물건이 고장나면, 동네에 있는 전파상(혹은 전파사)로 쪼르르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부터 TV에 이르는 가전까지...

전파상에 들어서면 특유한 냄새가 났고, 낯선 기계들 사이에서 기계가 고쳐지는 모습은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작동을 시작하는 기기를 보면 그 생각은 더욱 커졌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전파상을 이제는 교과서에 나온 단편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뿐, 전파상의 흔적은 도통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천안역 원도심에 위치한 ‘유명전자’는 얼마 남지 않은 전파상으로서, 그리고 원도심의 살아있는 역사로서 가치가 있는 가게다. 원도심을 지켜봐온 연장자로서, 원도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명전자

오랜 경험으로 잔뼈가 굵은 곳

유명전자에 방문하기 전, 유명전자에 관한 글이 있는지 찾아봤다. 앰프와 같은 기기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실력 좋은 곳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뛰어난 실력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유명전자 김지상 대표는 1980년부터 천안 원도심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오래 하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일이 늘어난 것 같아요. 전파상이라고 하면 새로운 제품을 파는 영업 차원의 일과 제품을 수리하는 수선 차원의 일을 주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대가 변하면서 제품을 구매하는 일이 점차 인터넷으로 향하게 되면서 지금의 전파상은 거의 수선 위주의 일을 하게 됩니다.”

천안 근처에 이제는 전파상이 많아봐야 다섯 손가락 안에 남은 것 같다며, 사라지는 전파상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명전자

“수선, 제품을 수리하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잘 안 배우려고 하죠. 고된만큼 벌이가 뛰어나지 않은 경향도 있습니다. 수리 자체가 어려운 것은 차치하고 수리했을 때 그 공임 자체가 높지 않습니다. 어떠한 기기를 수리하는 데 드는 공임이 있다면, 여기에 드는 시간과 인력이 적을수록 효율성이 높겠죠. 그런데 딱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수리할 수 있다.’고 결정할 수가 없거든요.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 부분의 문제가 있는지 특정도 해야 하고, 이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능숙해지기 전까진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새롭게 이 시장에 유입되는 사람이 없는 거죠.“ 김지상 대표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유명전자

척 하면 척


유명전자 내부에는 다양한 부속부터 소형 생활가전, 조명 등 다양한 물건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다양한 품목 때문에 물건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고객이 찾는 물건을 마술처럼 꺼내는 솜씨가 눈에 띄었다. 앞서 제품 구매는 인터넷으로 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나 작은 소형가전은 바로바로 필요할 때가 많아 아직도 전파상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짧은 시간에도 많은 고객이 오갔다. 불편한 점이나 문제가 있는 점을 설명하면 금세 해결책을 척척 꺼내오는 모습이 신기했다. 수리를 앞둔 다양한 기기 사이에서 가장 많이 수리가 들어오는 물건을 물었다.

유명전자

“가전은 이제 서비스 체계가 잘 잡혀있으니, 그쪽을 수리하는 일은 좀 많이 사라졌습니다. 가끔 오래된 물건에 애착을 담고 수리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긴 하네요. 그러다 보니 지금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것은 방송용 앰프나 특수 장비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방송장비 위주로 한다고 보면 되겠네요. 이쪽 장비들은 AS 체계가 아직 널리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있고, 전문적인 지식과 오랜 경험을 갖고 수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이렇게 흘러오는 물건이 많습니다.”

유명전자

더 나은 천안 원도심을 그리다

천안 원도심에 오래 자리잡은 어르신으로서 천안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물었다. 잠시 고민한 후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현재 천안 원도심 상권의 큰 축은 재래시장입니다. 개발이 다른 쪽에 일어나다보니 ‘원도심’이라는 용어가 생겼죠. 상권 활성화를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는데,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지금 원도심에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사람이 와서 할 일이 없어요. 인구 유입자체가 되지 않다 보니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지상 대표는 그래도 희망적인 점은 주변에 대단위 거주지가 빠르게 생기고 있고, 천안시에서도 의욕적으로 상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유명전자

한 고객이 마사지 기기 수리를 맡기러 오면서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요즘은 오래돼 고장 난 기기면 ‘버리고 새로 사라’는 이야기를 쉽게 하곤 한다. 하지만 애착 때문에, 혹은 다른 어떤 가치 때문에 오래된 기기를 버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마치 고객이 들고 온 오래된 마사지 기기처럼 말이다.

옛 것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유명전자를 나섰다. 소중한 기억이 담긴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유명전자에 방문해보자. 아마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전파상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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