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글이 되어 머무는 곳
캘리스테이 

137번째 이야기 / 2023.11.30

디지털 사회가 도래하며 우리는 더 이상 종이와 펜을 들고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등의 기기를 통해 글을 써서 의견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디지털 타이핑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 역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아름다운 글씨’라는 뜻의 캘리그라피는 정형화된 틀을 넘어 매 글자마다 감정과 생각을 담아낸다. 종이 위에서 유려하게 펼쳐지는 선과 획은 디지털 폰트에선 느끼기 힘든 조형미와 운율이 있다. 잘 벼려진 캘리그라피는 마치 그림처럼 음악처럼 좋은 창작물로서 감동을 준다.

천안역 지하상가에 자리한 <캘리스테이>의 이정아 대표는 이런 캘리그라피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그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행복을 심어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이 공방을 만들게 되었다.

마침내 피워낸 재능

‘글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인 <캘리스테이>는 치열한 경쟁 끝에 천안시 창조문화산업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시작됐다. 1차적으로 서류 심사를 하고 여기서 합격해야 ppt로 브리핑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모든 관문을 거쳐 마침내 공방을 열게 되었고 최근 감격스런 첫돌을 맞았다.

“10년 정도 운영한 미술학원을 개인 사정상 닫게 된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당시에는 생소했던 분야인 캘리그라피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우연히 접하게 되었지만 배우는 과정이 이상하리만큼 하나도 어렵지가 않았습니다. 마치 딱 맞는 내 옷을 입은 것 마냥, 그저 편안하고 무리가 없었어요. 하루하루 재밌게 하다보니 실력이 저절로 쌓이고 그렇게 전문가 과정을 거쳐 협회를 만들기까지 7년 동안을 캘리그라피와 함께 보냈습니다.”

전시된 멋진 작업물들을 보고 있자니 더 오랜 경력이 예상되어 전공을 물었으나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전 사실 미술을 전공한 건 아니에요. 우연히 접하게 된 건데 그림이나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모든 순간이 정말 너무 즐겁기만 하고 전혀 어렵게 느껴지질 않더라고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매일 기분 좋고 행복하게 열심히 연습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서 전 나이에 구애받지 말고 무엇이든 일단 시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해보지 않았을 뿐 몰랐던 본인의 잠재력을 분명 찾으실 수 있을거라 믿어요.”

빛을 담은 글씨

이정아 대표의 호는 ‘담빛’이다. ‘글씨에 빛을 담다’라는 의미다. 이대표는 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빛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캘리그라피 전문가 양성을 위해 「담빛 캘리 디자인 협회」를 설립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도 하여 이대표가 제시한 교육 과정을 모두 이수한 수강생들에게 직접 민간자격증 부여도 가능하게 되었다.
캘리그라피 수업은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 자격증반의 과정이 있는데 자격증 취득 과정은 최소 10개월 정도 소요된다. 최종적으로 기본작 15점, 응용작 3점 총 18장의 작품을 평가한 후 자격증을 부여한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수강생들은 자신만의 캘리그라피를 만들어가며, 이 대표의 시그니처 캘리인 '담빛체'도 배울 수 있다.

“좋은 캘리그라피를 위한 중요한 요소에는 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글씨의 두께, 둘째는 구도, 셋째는 강약 조절입니다. 이 세 개의 요소가 티키타카를 이루며 톱니바퀴가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갈 때 멋진 캘리그라피를 쓸 수 있어요. 이런 기본을 통달하게 됐을 때 비로소 본인만의 캘리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정아 대표는 수강생들의 빠른 습득과 이해를 위해 직접 교재도 만들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해당 교재는 인터넷 구매도 가능하여 독학으로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이들에게도 유용하다. 햇볕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리쬐듯 ‘담빛’ 또한 모든 이에게 골고루 그 빛을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힐링 매개체

이정아 대표는 처음으로 쓴 캘리그라피를 친구에게 선물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당신은 별보다 빛나고 꽃보다 곱다는 내용의 캘리그라피를 액자로 만들어서 선물했어요. 처음으로 만든 작업물이라 지금 돌이켜보면 서툰 점이 많아서 아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요. 그치만 선물 받은 친구는 진심으로 감동했다며 펑펑 울었어요. 결국 선물한 저도 울컥해서 둘이 함께 토끼눈이 되도록 울었던 추억이 있어요. 아 바로 이게 캘리그라피가 주는 힘이구나-싶었어요.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든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그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도 열심히 선물하고 있어요.”

이대표가 생각하는 캘리그라피는 곧 ‘힐링’이다. 받는 사람에게도 격려가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캘리를 쓰고 있는 본인이 가장 치유된다고 한다. 예쁘고 좋은 글귀를 정성 들여 새기다 보면 마음도 저절로 정화되고 잡념이 사라지면서 생각이 맑아진다고.

‘수강생들 배고프지 않게 하기’라는 운영 원칙을 세우고 늘 맛있는 차와 다과를 준비하는 이유도 공방을 찾는 이들이 글씨를 연습하며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길 바라서이다.


“단순히 강사와 수강생이라는 수직적이고 딱딱한 관계가 아닌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친구이자 동료라고 생각해요. 수련 과정이 끝나면 언젠가 이 공방을 떠나게 되겠지만 함께 하는 동안에는 즐겁고 좋은 추억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어요. 제 공방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캘리스테이>에는 글자만 머무는 것이 아닌 다양한 감정이 숨 쉬고 있다. 그 때문일까. 이곳에서 배우게 될 캘리그라피는 어쩐지 만져보면 생생한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일상 속 힐링 취미를 찾고 있다면 이곳에 방문하여 아름다운 글씨들을 마음에 새겨보면 어떨까. 마음 넉넉한 이정아 대표가 운영하는 <캘리스테이>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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